독일 현대 미술이 가는 길, 그 위의 팀 아이텔
독일의 현대 미술은 통일 이후 1990년대부터 국제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유럽의 3대 미술 행사로 손꼽히는 카셀 도큐멘터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밑동으로 독일의 새로운 미술 관련 정책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미술 전공자 지원 및 예술가 사회보험 제도 마련과 연간 300회 이상의 후원 행사 개최를 예로 볼 수 있다. 독일 현대 미술은 결과적으로 다수의 작가로부터 양질의 작품을 받아 판매를 활발히 하여 세계 작품 매매의 6%를 차지하고 있다. 아트프라이스닷컴 등에 의하면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 안젤름 키퍼 등은 가격이 매년 20~25% 증가 통계를 보인다.
팀 아이텔은 독일 현대 미술 중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 작가다. 라이프치히는 도시의 규모는 작지만, 남북으로 스칸디나비아와 이탈리아, 동서로 프랑스와 모스크바의 교차로에 위치해 상업 도시로 융성한 곳이다. 멘델스존과 바그너의 고향이며 바흐와 괴테의 활동지로 알려져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자랑한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동독에 포함, 사회주의 아래서 ‘작은 파리’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조용한 시기를 보냈다. 이후 1990년대 통일을 이루며 세계적으로 떠오른 ‘신 라이프치히 화파’로 다시 명성을 되찾았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는 특정 표현 기법이나 주제를 공통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회화의 기초를 중요시하며 구성과 색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기반으로 한다. 동독에서 다루었던 구상회화에 서독에서 널리 적용한 추상성을 더해 특유의 화풍을 구사하는 것을 대부분이다. 또한 현재에 대한 관찰자적 태도를 보이며 자아를 사회와 분리해 인간 존재의 의미 등을 주제로 다룬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가 등장하던 1990년대는 개념미술, 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영역을 확장하던 시기다. ‘신 라이프치히 화파’는 그 가운데서 뛰어난 회화 기술과 새로운 주제를 통해 특유의 손맛과 서정적 분위기를 창출해 관심을 끌어냈다. 관심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신 라이프치히’의 수장 격인 네오 라우흐 작품은 150호 기준 100만 달러를 웃도는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이텔 또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 라이프치히’ 작가답게 학고재 갤러리와 더불어 아이겐+아르트 갤러리, 페이스 갤러리 등 국제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아르켄 현대미술관, 오스트리아 현대미술관, 도이치뱅크 콜렉션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메인 부문에 개인 부스를 마련해 관심을 모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노련미와 더 깊어진 사유가 배어있는 신작을 통해 더 큰 호응을 이끌 것이다.
팀 아이텔의 소외된 것을 바라보는 눈
팀 아이텔은 2011년 학고재갤러리 전시 당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회화라는 것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고안품 같은 것이다.” 아이텔의 회화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가 지은 전시 제목 ‘멀다. 그러나 가깝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멀다, 그러나 가깝다.’는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에 등장하는 문구다. 벤야민이 아우라 개념을 설명하는데 사용한 문구로 아이텔은 세상의 모든 사람, 사물에도 예술 작품처럼 아우라가 있음을 믿는다.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지만 유심히 살피지 못하고 지나쳐온 대상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우리의 인식 밖에 있던 대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 새롭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팀 아이텔은 삶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아름답지 않은 존재들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쓸쓸히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 외롭게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 노숙자 등 소외당하는 듯한 존재가 화면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그는 회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모든 존재를 의식하고, 인식하여 각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자 노력한다.
팀 아이텔의 이와 같은 시도는 ‘내부’와 ‘외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팀 아이텔에게 회화란 화면 안에 있는 개인과 화면 바깥에 있는 또 다른 개인의 이야기다. 또는 인식 바깥에 있는 대상과 인식의 테두리 안에 있는 대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의 회화는 캔버스를 기준으로 안팎으로 나누어진, 인식의 세계의 가운데 놓여있다. 그 안팎을 넘나들며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러나 모든 것이 모여 완전한 삶을 이루는, 풍경을 담고 있다.
팀 아이텔의 회화는 소재의 측면에서도 공간에 대한 연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관이 작품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도시 근교의 자연 풍경을 건축물 곁에 배치하여 대비 효과를 끌어내기도 한다. 그는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재발견하여 화폭 위에 자신만의 가상 세계를 담아낸다.
팀 아이텔의 공간에 대한 연구는 곧 시간에 대한 연구로 발전한다.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역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에 대한 연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캔버스 위에 펼쳐낸다. 미술관에 전시된 왕의 얼굴 조각을 그려 중세 시대와 조각을 바라보는 그 순간을 연결하기도 하고 한 인물의 몸을 둘로 갈라지게 그려 시간에 따른 동작의 변화를 담기도 한다.
팀 아이텔의 작품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
팀 아이텔의 작품 앞에서 종종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관람객이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앞에 한참을 머물다 가는 것이다. 이는 차분한 색조 사용과 안정감 있는 붓질을 통해 서정적 분위기를 끌어내며 화면 속 배경과 인물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들어 한참을 살펴보게 되기 때문이다.
팀 아이텔은 평소에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스냅숏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화면 속 배경을 점차 간소화하여 절제된 구성의 화면을 만든다. 이 화면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는 거리, 건물 등을 담고 있지만 편집되었기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준다. 관람객은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낯선 느낌에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 주변에서 본 듯한 장면임을 발견하고 편안함을 느껴 화면에 집중하게 된다.
팀 아이텔의 회화 속 인물은 대부분 뒷모습만 보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등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회화 속 인물이 명확히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는 보편적 대상으로 나타나기에 관객은 그에게서 자신을 반영하게 된다. 아이텔은 보편적 대상과 배경을 그려 관람객에게 해석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본인 작품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간을 통해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하게 한다. 현대인의 삶이 메말랐기에 외로움, 우울함,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며 과거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