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개인전- 박여숙화랑
박여숙 화랑에서 이승희의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과 제주에서 각각 다른 주제로 동시에 진행되는 전시에는 53점의 평면 도자회화와 대형 대나무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같은 기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 런던 빅토리아앤알버츠뮤지엄 , 베이징 CIGA 특별전, KIAF 총 6곳에 동시에 전시한다.
반복과 무심함
이번 서울과 제주전시의 제목인 'TAO'는 그의 중요한 주제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도를 행한다.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평면도자 회화’ 또한 무심함과 반복이 켜켜이 쌓여서 완성된 작품들이다. 평면도자 작업은 하루에 한 번씩만 흙물을 붓질을 해야 한다. 빨리 완성하고 싶은 조바심에 흙물이 마르기 전에 덧칠하면, 그 부분은 들떠버리고 결국엔 다시 긁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한 작업과정을 거쳐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약 3개월이 걸리는데, 처음에는 작업 중인 작품을 보면 조바심을 참기 힘들어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작업실을 3곳에 얻어 이동하면서 작업하였다. 작가는 이렇게 무심함을 반복하며 내면화하여 결국엔 그만의 ‘TAO'를 세운 것이다.
진부함에서 신선함으로의 탈피
2008년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오히려 서양미술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근, 현대미술관을 방문하며 접했던 서양미술에 매료되어 감동을 받았다. 그러던 중, 지인을 만나기 위해 갔던 고궁박물관이 작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어느 한 청나라의 두루마리 그림을 계속 확대해서 보던 중 확대된 화면 속 진부하게 보이던 동양화가 현대적이고 새로운 느낌의 작품으로 다가온 것 이다. 이때부터 그는 창작의 열정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동양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의 조선 도자기들을 평면회화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작업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단순히 입체를 평면으로 옮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조형성을 살린 예술적 평면을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합(盒)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대거 전시될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기능성의 배제’를 이번 전시에서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승희는 ‘도자 회화’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에 그치지 않고, 도자 대나무라는 새로운 작업을 이어갔다. 고사에 중국 송대의 문인인 소동파가 붉은 물감으로 대나무를 그린 것을 본 한 선비가 “세상에 붉은 대나무가 어디 있는가?” 라며 조롱조로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럼 검은 대나무는 세상 어디에 있소?”라고 받아 치며, 그 선비를 머쓱케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이승희는 올곧지만 유연함과 강인함을 겸비한 군자의 상징으로 익숙했던 대나무를 재해석 했다.
사군자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나무는, 사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이다. 실제 대나무 숲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죽림이 어떤 색인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런 보편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대나무의 새로운 매력을 강렬하게 느끼기 위해 붉은색, 옥색 등 실제 대나무가 가지지 못하는 색들로 도자 대나무를 만들었다. 즉, 그의 작품을 보면 대나무라는 것을 떠올 릴 수는 있지만, 그 색감과 특성, 재질 등은 이승희만의 대나무 인 것이다. 2015년 붉은 대나무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동양화의 한 폭을 재현한 듯한 묵죽(墨竹)을 박여숙화랑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무의도의 의도성
작가는 계속해서 도전하고 변화를 시도하지만, 그러한 변화가 꼭 그의 의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무의도의 의도성’을 인정한 뒤에야 진정한 작가의 의도를 느낄 수 있다. 보통은 의도와 벗어난 결과를 ‘실패한 것’ 으로 규정하고, 규격에 맞는 것을 추구 하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안목이 바뀌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 깨버린 것이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라며 안목의 유동성을 짚고 넘어간다. 찌그러지고, 색이 의도하지 않게 변한다 하더라도, 작가는 ‘무의도’의 미감까지도 수용하고 본인의 것으로 안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더욱 새롭고 신선하며, 예상하기 힘든 불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변화까지도 포용한다.
박여숙화랑에서 볼 수 있는 대나무 설치 작품들 속에서도 ‘의도성과 무의도성’을 살펴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묵죽림(墨竹林) 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 묵죽이 아니다. 7가지 이상의 색상과 무광, 반광, 유광 등 광택의 변화, 빛과 만나면서 보이는 색과 그림자에서 보이는 작가의 의도성은 경탄이 나온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의도하지는 않은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천 여점을 굽는 과정 속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뒤틀리고, 고루발리지 않은 유약으로 표면이 불규칙한 작품들을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제주 “TAO: 도자기가 아니다”는 9월 9일부터 11월 26일까지 매주 주말 예약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으며, 서울 “TAO: Between Dimensions”은 9월 12일부터 10월 14일까지 계속된다. 또,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전은 17년 9월 9일부터 18년 2월 18일 까지 만나 볼 수 있다.
이승희는 1958년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했다. 1993년부터 2016년도 박여숙화랑 서울과 제주에서의 개인전까지 약 20여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 최순우옛집 ,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 경주 선재미술관, 대전 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와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특별전과 발로리스 도자비엔날레, 프랑스 베르나르도 재단의 등 국제 비엔날레에 초대되었다.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 , 런던 빅토리아앤알버츠뮤지엄 , 일본 지바 현립 미술관 , 후나바시 시민갤러리 , 런던 사치갤러리 , 홍콩 아트센터 등 다수의 해외전시에 초대되었다.
현재 중국 최고의 도자기 도시인 장시성(江西省)의 징더전(景德鎭)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 국립현대미술관, 몸 미술관,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Krakow, MOCAK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