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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1920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다다이스트, 구축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구조’를 작품의 영감으로 삼았던 예술가들처럼 철교, 라디오 송신탑, 터널, 나선형 계단 등 산업시대의 결과물을 회화와 조각에 반영하였으며 ‘기계는 아름답다’는 믿음을 갖고 예술로 사회의 변혁을 꿈꿨다. 네덜란드 데 스틸, 러시아 구축주의, 이탈리아 미래주의 등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합적으로 수렴한 바우하우스에서 ‘포토그램’과 ‘포토플라스틱’을 창안한 모홀리-나기. 원근법이 발명된 르네상스 이래 유럽의 근대적 시지각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사건은 카메라의 탄생이었다. 카메라 옵스큐라, 하나의 소실점을 예술가의 손(회화)이 아닌 그들의 눈(사진)으로 조직하는 것에서 나아가 모홀리-나기는 ‘새로운 비전’ 을 만들어냈다. 모홀리-나기는 빛, 소리, 움직임 등 비물질에 가까운 것을 재료로 삼아 전에 없던 상(image)을 창조해내며 사람들의 시지각 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포토그램에서 빛과 투명성의 직접적인 관계를 드러내고, 포토플라스틱으로 파편적으로 흩어진 이미지와 언어를 한 화면 안에 결합시킨 그의 실험은 공간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키네틱 조각과 영화로 이어지며 1930년 ‘빛-공간 변조기’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1937년 미국으로 건너와 뉴바우하우스를 열고 ‘총체성’과 ‘통합성’을 실현하고 인간과 기계의 유기적 관계를 탐구한 인물, 그의 관심사는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시공간 개념이었다. 공간을 물질로 인식하며 총체적인 조건 속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시간의 지평선을 넘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미래의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 말한 모홀리-나기의 예견처럼 그 답은 현재가 아닌 미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