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작가는 무의식 속에서 마주한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차곡차곡 쌓는다. 추상적인 붓질로 파편화된 화면은 감상자의 관심을 자아내는데, 그 안에는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익숙한 대상들이 숨겨져 있다.
생각에 잠긴 듯한 인물, 우연히 마주한 풍경, 재해석된 명화 등 작품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만의 시각적 요소를 통해 본질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화려한 컬러와 속도감 있는 붓질로 표현된 익숙한 형태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낯선 경험을 마주하게 한다.
이주희는 나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나무는 가지에 흠집이 생기면 수액을 만들어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는데, 묵묵히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성장하는 나무를 본 작가는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과 품어준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했다.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모아놓고 보면 조화로운 수많은 나무들처럼 가지각색으로 살고 있지만 우리네 삶도 조화롭다고 말하는 그는 우리의 삶도 나무처럼 묵묵히 방향성을 잃지 않고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권봄이는 수백 장의 종이를 말아 단단한 종이 기둥을 만든다. 약하기만 한 종이의 본성을 지우고 견고한 물성 부여하는 일이기도 한 종이말이 작업은 불필요한 잡념을 비우고 철저히 창작에만 몰입하여 작가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는 행위이다.
의식과 무의식, 기계적 반복과 창작이 반복되는 이 과정은 결국 ‘원’이라는 순환의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크고 작은 종이 기둥들이 빼곡히 밀집된 그의 작품은 선, 면 그리고 입체로 이어지는 무한의 순환이 느껴지며, 다채로운 색상의 종이 기둥들이 하나의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한글의 선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강은혜 작가는 ‘선’ 하나로 3차원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는 문자로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한글의 추상성과 기하학성이라는 순수 시각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선’이라는 소재를 표현하기 위해 공간을 관찰하고, 그렇게 얻은 시각적 추론의 결과를 설치, 평면, 입체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낸다.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선들은 전시장 벽면을 캔버스 삼아, 공간 안에서 교차되고 중첩된다. 그에게 선은 ‘움직임과 흐름’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이다.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은 불안감을 자아내기 마련이다. 공간에 대한 안정을 찾고자 했던 조정은 작가는 자연의 공간으로 눈을 돌렸고, 그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찾고자 했다.
자연이라는 곳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느꼈지만, 결국 현대인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을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이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캔버스 안에 뒤얽힌 자연과 도시의 이미지들은 존재 불가능한 이상적 공간에 대한 작가의 갈망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