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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전수천 "교회에 보관한 작품 뺏겨 억울···대법원 재심 청구"

2017.09.18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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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 보문동 한 교회에 걸려 있는 전수천 '무제'. 사진=전수천 제공.

"작가로서 제 명예에크게 상처를 입고 잠을 이루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베니스비엔날레 작가'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전수천(70)작가가 "그 교회에 있는 그림은 판매한 것이 아니라 맡겨놓았던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근 전주에서 올라와 기자를 만난 작가는 "무료로 1억5000만원 상당의 성전기념비를 제작해주고 작품 '무제'를 빼앗겼고, 거기에 횡령죄에 벌금형까지 받았다"며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1993년부터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한 교회에 걸려 있는 작품 '무제'때문이다. 전수천 작가는 "그림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며 2014년부터 3년간 교회와 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작가는 "작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며 보관만 요청했다"고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올 봄에도 열린 대법원의 판단은 같았다.

【서울=뉴시스】 설치미술가 전수천 작가.

전수천 작가에 따르면 교회와 악연은 24년전 시작됐다.

1993년 작가는 당시 대전엑스포 전시장에 설치하게 될 상징조형물 공모에 당선되어 작품을 제작중이었다. 재미작가로서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던 그는 서울 휘경동에 작업실을 마련해 공모 작품 '비상의 공간' 작업중, 당시 한국이동통신 조모 사장을 통해 보문동의 교회와 알게 됐다. 조 사장은 그 교회 장로였다.

작가는 "조 사장이 교회의 박모 목사를 소개하면서 교회가 돈이 없으니 교회 77주년 성전 기념비를 제작해 줄 것을 부탁하여 1억5000 상당의 기념비를 무료로 제작하여 기증했다"고 말했다. 엑스포 조형물 제작비를 한국이동통신이 후원하는 관계 때문이었다는 것.

우호적인 관계에서 문제가 시작된 건 작가가 93년 10월경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하는 상황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십자가가 그려진 '무제'로 180호 크기의 대작이다. 국내에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작가는 '성전 기념비'로 알게된 교회 목사에게 "작품을 보관 전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목사가 승낙해 1993년 9월경부터 무제 작품을 교회에 보관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하게 된 건 작가가 "작품이 훼손된 곳이 많으니 보수하겠다"고 하면서다. 2013년 3월 작가는 무제 작품(시가 7000만원)을 받아갔고, 이후 교회측으로부터 반환요구를 받았지만 거부했다.소송 과정에서 작가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보관한" 작품이었는데, 당시 목사가 500만원을 지출했다는 취지로 94년 7월 기재된 교회 회의록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됐다. 이 때문에 교회에서는 이 회의록을 근거로 이 사건의 작품이 교회의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무제' 작품은 다시 교회로 돌아간 상태다.

전수천 작가는 "목사가 지불했다는 500만원은 교회 기록지에 1994년 7월에 지불했다고 되어 있지만 나는 작품을 판 적이 없으며 500만도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또 당시 전속화랑인 가나화랑도 작품을 판매한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그 목사가 나에게 현금 400만원을 줬는데, 성전기념비를 무료로 제작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공료 등에 보태 쓰라고 준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교회의 성전기념비를 무료로 제작해 준 상황에서 수천만원 이상의 가격으로 매도할수 있었던 작품을 500만원에 매도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이번 소송과 관련 전수천 작가는 "내 명예도 중요하지만 미술계를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화랑없이 작가간 거래의 위험과 작품거래나 위임시 계약서 작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다.

한편, 전수천 작가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첫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 특별상을 수상하며 한국 설치미술가로 급부상했다. 이후 파리, 미국 등 해외에서 개인전을 여는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고 2005년 흰 천으로 뒤덮인 열차가 미국을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영원한 민족 비전의 선' 프로젝트를 추진 주목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를 역임, 2011년 정년퇴임 했다. 현재 전주에서 대안예술학교를 설립, '창작예술학교 비닐하우스 AA(Art Adapter, 아트 어댑터)'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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