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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박현주 아트클럽]곰팡이 덕분에 혁신…최영걸 '성실한 순례'

2017.11.17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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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한국화가 최영걸이 이화익갤러리에서 6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성실한 순례를 타이틀로 유럽의 성당과 일상풍경을 화폭에 사진처럼 담아낸 그림 16점을 선보인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고 '그림도 사본 사람이 많이 산다.' 미술시장 화상들의 얘기다.

하지만 이젠 작가들도 할 말이 생겼다. '그림도 팔아본 사람이 안다.'

그림은 전시했다고, 또 판매했다고 끝난게 아니다. 미술작업은 끝나지 않는 게임이다.

그건 '그림을 팔아본 사람'이 안다. 한국화가 최영걸(50·추계예대 교수)은 그걸 10년만에 알았다.

6년만에 여는 개인전을 앞두고 만난 그는, 그 '앎'을 공개했다. 모든 건 계기가 있다.

올해 어느 날이었다. 해외 컬렉터 초대로 홍콩 완차이 엠파이어 호텔을 갔다. 호텔 주인은 최영걸의 그림을 사랑했다. 그의 그림을 걸기위해 호텔을 리노베이션 할 정도로 극강의 애정을 보였다. 로비엔 최영걸 그림으로 도배됐다.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두각을 보인 그의 그림을 엠파이어 호텔 회장이 해마다 사들였다고 한다.

기쁨도 잠시, 작가는 고민에 직면했다. 호텔 주인인 컬렉터가 그를 한 점의 그림앞으로 데려갔다. 앗~. 곰팡이 자욱이 보였다. 보수된 상태였지만 완벽히 안지워있었다.

컬렉터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떤 방법이 있느냐" 물었다.

"그림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는데, '올게 왔다'는 기분이었죠."

곰팡이는 기후 탓이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홍콩은 겨울에도 습도가 80~90%가 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번도 못봤던 현상이었어요. 10여년간 단 한번도 이런 문제와 마주친적은 없었거든요."

알고보니 동양화가 많은 홍콩 현지작가들도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배접을 할때 풀이 문제인지, 종이인지, 손때문인지, 곰팡이 포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기 때문에 답답했다.

"복원전문가를 찾아갔죠. 그런데 그도 답이 없다고 하더군요."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한국화가 최영걸 추계예대 교수가 6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17일부터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성실한 순례'를 타이틀로 '사진같은 한국화' 16점을 선보인다. 이전 국내 산수화 풍경을 담은 그림과 달리 이번 전시는 유럽의 성당과 풍경을 그려냈다. 최근 몇 년 동안 작가가 외국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순간의 표정들이 작가의 세련된 필치를 반영해주는 먹이나 수채 물감으로 독특하게 표현된 작품들이다. 전시는 12월 7일까지.

그 일이 있고난 후 곰팡이와 전쟁이 시작됐다. '어떻게 방지할수 있을까' 고민은 재료의 실험으로 이어졌고 실마리가 보였다.

답은 안에 있었다. 고정관념을 바꾸니 무한하게 펼쳐졌다. 화선지를 잠시 물려두고 서양 재료로 다가섰다. 수채화 용지와 캔버스에 그리면 되는 일이었다. (배접할때)풀을 안쓰는 종이가 없을까? 의문으로 택한 재료였다.

2000년대 초반 한국화의 새로움을 선사하며 스타작가가 됐던 최영걸은 재료의 변화로 한번 더 혁신 플랫폼을 강화했다. "새로운 재료를 시도해보는 계기가 된거죠." 곰팡이가 스승인 셈이다.

17일부터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6년만에 여는 개인전은 그 비밀을 담아 확장된 재료로 만든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타이틀은 '성실의 순례'로 유럽의 성당과 외국인들의 일상 풍경을 담아냈다. 서구의 풍광을 최영걸 기법으로 그려냈다. 달라진게 있다면 우리 산하의 풍경을 촘촘하게 탐구하던 작가의 시선이 국내를 벗어났다는 차이다.

하지만 '최영걸표' 밀도감은 더 강력해졌다. 해상도 높은 사진처럼 가까이서 밀착해봐도 깨지지 않는 화상도를 자랑한다.

흑백으로 담아낸 유럽의 성당의 내부와 외부 모습은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길거리 다리위에서 연주하는 흑인밴드의 모습도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시간의 향기를 품어낸다. 고대 유적지의 한 귀퉁이에서 잠들거나 문설주에 앉아 있는 개와 고양이,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비둘기 같은 동물까지 화폭에서 실제감을 발휘한다.

최영걸은 전시 타이틀처럼 '성실한 순례자'같은 화가다.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즉각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 있다. 대체 어떻게 그려요? 이렇게 그리면 얼마가 걸려요?"

어떻게 그리나.

먼저 사진을 찍고(이전에는 현장에서 스케치했지만) 풍경을 고르고 컴퓨터로 작업 한다. 이전에 디자이너로 일했기때문에 쉽게 하는 일이다. 스케치는 갈필로 형태를 잡고 톤을 입힐때 수묵을 묽게 해서 올린다. 먹과 바늘같은 세필을 이용해 치밀함과 대결한다. 5mm 세필로 그리다가 점점점 작은 1mm 붓으로 마무리를 한다.

시간은? 적게는 2주, 많게는 두달정도까지 갈때도 있다.하지만 이또한 정확치는 않다. 시간을 재고 하는 일이 아니기때문이다.

화랑은 그의 더딘 작업때문에 기다림의 미학에 빠진다. 벌써 3년전부터 전시를 하자고 했던 일이었다. 6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는 그래서 시작이 좋다. 목빠진 컬렉터들이 전시를 열자마자 그림을 사고 있다. 물론 전시때마다 작품은 모두 팔렸다. 13년째 작가와 화랑이 전속 의리를 맺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서울=뉴시스】최영걸, 브릿지 밴드 Bridge Band, 68×98cm, 비앙코지에 수묵 Chinese ink on Bianco Paper, 2017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번 2011년 개인전 이후의 작품 변화를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비교적 폭넓은 내용과 형식의 작품들이 제시되고 있다.

작가가 외국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순간의 표정들이 작가의 세련된 필치를 반영해주는 먹이나 수채 물감으로 독특하게 표현된 작품들이 눈에 띤다. 터키와 러시아 그리고 스페인 등의 이국적인 공간에서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은 표정들이 정성스럽게 화면에 내려앉은 작품들은 최영걸의 창작 과정에서 늘 그래왔듯이 성실한 손 노동이 압권이다.

재료의 변화가 있지만 여전한 건 우리 색, 먹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모노톤 사진 같은 그림, 굳이 먹을 써서 그려야만 할까. 우문을 던지자 그는 "먹을 통제한다"고 했다.

잉크나 수채화물감하고는 다른 성질이 있죠. 그을음. 물감은 닦이면 닦여요. 수정이 가능하죠. 그런데 먹은 닦이지가 않아요. 맨 처음 먹색은 그 위에 발라도 올라옵니다. 요즘 사람들은 색상만 보고 판단하죠. 단색의 느낌으로 받아들인다고나 할까요."

그는 서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학창시절 전통화와는 달리 사진같은 수묵화를 그려 교수는 물론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했다.

"먹하면 발묵이라고 생각하는 데 틀린 생각이에요. 발묵은 번지는게 아니라 유동적인 상태, 머금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겁니다."

그러려면 종이가 두껍고 번지지 않아야 한다. 그는 "청나라때 쓰던 종이는 지금 화선지처럼 번지지 않았다. 번지는 효과가 있는 화선지는 명나라 말기에 만들어졌다"며 "발묵을 먹의 특징적으로 생각하는건 잘못됐다"고 바로잡았다.

그는 "먹은 인류가 발명해온 안료중 하나"라며 먹을 예찬했다. "영구불멸하죠. 먹이 잉크와 블랙 물감과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어요. 물론 일반적으로 차이를 못느끼겠지만 전문가들이 보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챕니다. 먹이 갖고 있는 동양화의 상징성이 있어요."

"먹을 왜 쓰냐고요? 안료자체가 가지는 성질도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수묵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있어요."

【서울=뉴시스】최영걸, 화양연화 (花樣年華) The Brilliant Moment, 117×219cm, 화선지에 수묵담채,2017

10년 넘게 이어진 '하이퍼리얼리즘 수묵화'는 이제 재료의 탄탄함을 장착했다. 고도의 노동집약적인 생산물인 작품은 재료의 변화로 영원성까지 담보하게 됐다.(물론 컬렉터 A/S 차원이 있다)

이번 전시에 내놓은 전남 구례 산수유 마을 풍경을 담은 그림이 예다. 산수유 그림은 그의 시그니처같은 작품인데, 이번 작품은 색감의 재료가 달라졌다.

노란색. 일반적으로 전통 물감은 등황(등나무 진)을 쓰는데 이는 식물성 안료다. "그런데 빛에 취약합니다. 직광이 떨어지면 몇년안에 색이 바래버리죠. 그래서 바꾼 것이 '카드뮴 엘로우' 독일에서 나오는 물감을 쓴겁니다."

그는 "전통을 잇는다 해서 전통 그대로 하는게 아니라 우수한 걸 구입해서 쓴다"고 했다. "동양화 서양화라는 말이 존재하잖아요. 그림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이 카테고리가 부담일수 있고 득이 될수 있지만 중요한 건 서양과 동양사이에서 우리 세대(386)는 낀 세대입니다. 사고방식은 동양이 유지되고 있는 묘한 느낌이 있어서 저도 그런 고민에 끼인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결과물인거죠."

한국화가로서 재료에 대해 할말이 많다. 그가 한지를 쓰다 수채화물감이나 캔버스로 화폭을 바꾼 이유다.

"한지는 문제가 중성화처리가 안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서양은 비앙코지 경우 면이 100% 50%인 경우도 있는데 중성처리가 되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황변을 방지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뜻이죠."

한지는 질겨 삵지 않지만 황변이 온다. 누래지는 것은 화가나 컬렉터가 바라는 게 아니다. "중성화처리를 하면 화이트를 화이트대로 유지할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 연구개발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안타까워요"

전통재료 업체가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화선지 값이 3배가 올랐다. "수요가 없기때문인데, 종이 만드는 회사도 문을 닫고 한지를 떠내는 발이 중요한데 발을 만드는 분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제가 장지를 가져다 쓰는 곳이 있는데 힘들어요. 120호 종이를 10년전에 주문했는데 최근까지 소량만 받았어요.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전통화를 전공했다고 전통재료를 쓰는게 아니라 좋은 재료를 쓰기 위해 개발하고 차용한다. 그는 "동양화하는사람은 어쩔수 없이 서양화 공부를 해야한다"면서 "현대미술은 포스트모던 이후 이제 동양적인 사고나 형식이 차용된 경우가 많다"며 한국화가로서 자부심을 보였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6년만에 전시장에 나온 한국화가 최영걸은 더 진지해 보였다. 전통 화론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인 감각과 정묘한 표현력으로 진부해진 한국화를 새롭게 그려낸 그는 한국미술 대표작가로 국내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학생때 아버지가 출장길에 사다준 관광용 두루마리 그림 때문에 그는 화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 이태리 신부에서 중국 궁정화가가 된 낭세녕(1688∼1766)의 그림이었다. 서양인이 중국 재료로 비단에 그린 그림. 동서양 기법이 섞인 묘한 정물화는 그를 동양화 전공으로 이끌었다. 낭세녕의 그림을 보고 꿈을 꿨고 중국 국보 1호 장택단의 그림에서 좌절했지만 최영걸은 한국화 대표작가로 승승장구세다.

무명의 한국 작가를 쏘아올린 건 크리스티 홍콩경매사다. 2008년 홍콩 크리스티 5월 경매에서 그의 최고 낙찰가(41만5000 홍콩달러)를 기록했다. 2012년에는 그의 '봄을 찾아서(finding spiring)'가 추정가 20만 홍콩달러(2976만원)를 웃도는 37만5000 홍콩달러(5581만원)에 낙찰되면서 해외컬렉터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경매에 출품되어 '크리스티가 사랑하는 작가'로도 불린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한국화 시장의 물꼬를 다시 튼 작가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아트마켓을 무대로 뜨거운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작품값도 상승세다. 현재 전시에 나온 산수유 풍경 '화양연화'(150호 규모)의 경우 4500만원에 판매한다.

'그림 좀 팔아본 작가' 최영걸은 동서양이 결합된 퓨전같은 그림, '낭세녕의 그림'을 닮아가고 있다. 먹을 버리지 않고 '피땀눈물'같은 집요한 열정으로 한국화에 천착하고 있는 것은 그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소명감이죠. 한국화에 관심이 적은 시대속에서 현대적으로 재석하고 접목시켜서 나아가고자 합니다. '새로운 한국화'라는 말도 애매하지만 제 그림은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도록 거부감없이 다가서고자하는 그림입니다. 먹과 종이의 확장된 표현력과 재료의 실험도 현대 생활에 밀착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한국화의 한계를 더 극복하고 싶어요." 전시는 12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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