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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원로작가 이봉열 "꼭 '단색화'가 아니어도 좋다"

2017.10.25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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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열 화백. (현대화랑 제공) © News1

전통창호에서 시작된 기하학적 서정추상…현대화랑서 8년만에 개인전

"'단색화'가 많이 유명해졌던데, 제 작품을 굳이 단색화 계열에 넣고 안 넣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하나의 단색조 계열 원로작가 작품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화랑에 걸렸다. 단색화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의 단색화'전 이후 국내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붐'이 형성되면서 수년 간 최고 '블루칩'으로 각광 받았으나 최근에 와서는 그 열기가 한풀 수그러드는 추세다. 그런 와중에 1930년대생 원로작가의 또다른 단색조 작품 20여 점이 소개된 것이다. 바로 이봉열 화백(81)이다.

이 화백이 25일부터 현대화랑에서 '공간여정'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전시 개막에 앞서 24일 언론에 미리 공개된 작품들은 눈에 익은 듯 낯설다. 2009년 개인전 이후 8년만에 여는 전시인 탓이다.

이봉열, 공간-7508, 1975, 캔버스에 아크릴, 145x145cm (현대화랑 제공) © News1

이봉열 화백은 1960~70년대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 낳은 스타작가였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1961년 국전 문교부장관상, 1972년 국전 추천작가상을 잇달아 받았다. 그러고는 곧장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1970년대 초만해도 대학교수 월급이 5만원쯤 했어요. 그런데 국전 추천작가상 수상금이 60만원이었죠. 상을 받고는 바로 파리 유학을 결심했어요.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요."

그는 "파리에서의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경험은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영문 타임지 뒷쪽에 있는 '아트'란을 통해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단편적 정보들을 얻던 청년작가 앞에 전혀 다른 미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이때부터 작품세계에서도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작품도 점점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모해갔다.

이봉열, 공간-7911, 1979-81, 캔버스에 아크릴, 69x138cm (현대화랑 제공) © News1

1970년대 작품들은 한국의 전통 창호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 창호에 햇살이 비쳐들 때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격자구조로 새겼다. 1980년대에는 격자구조의 해체를 시도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격자를 완전히 떠나 화면과 작가 자신을 일체화하는, 단색화 대표 작품들이 강조하는 이른바 '정신성'이 깃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화백은 "내 작품을 억지로 끼워맞춘다면 단색화일수도 있겠지만 단색화와는 다르다"며 "모노크롬, 미니멀리즘 회화로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신성이 깃든 동양적 작품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자신의 작품을 '기하학적 서정추상'이라고 했던 미술평론가 정병관의 평을 언급하며, "손이 가는대로 나타나는 표현에는 아무래도 그리는 이의 내면이 투영되기 마련"이라고 답했다.

이봉열, 무제공간-8806, 1988, 캔버스에 혼합매체, 150x150cm (현대화랑 제공) © News1

특히 '공간여정'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40여년 간 공간에 대해 탐구를 평면회화로 표현해왔던 그는 "말하기 어려운 공간이 던져주는 이야기들이 있다"며 "드로잉하듯 손가는 대로 마음에 들 때까지 표면을 다듬는다"고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이 화백은 팔십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노(老) 화백은 '팔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딱히 가족을 이루는 것에 대한 절실함도 없었고 그렇다고 풍류객으로 살아 온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흘러왔을 뿐"이라며 웃었다. 전시는 11월26일까지 이어진다.

이봉열, 무제공간-007, 2007, 캔버스에 혼합매체, 178x305cm (현대화랑 제공)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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