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World하루 3만걸음…'현대미술 순례길' 걷다

2017.06.22

[뉴스1] 김아미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이탈리아 베니스의 팔라초그라시에서 열리고 있는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 '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에 전시된 대형 신작 'Demon with Bowl'. 높이 18m가 넘는 이 조각 작품은 청동이 아닌 레진으로 만들어졌다. 프랑스의 PPR그룹 회장이자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인 프랑수와 피노 회장은 베니스 섬 내에 푼다델라와 팔라초그라시 두 곳의 전시공간을 열어 자신의 컬렉션 및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시기 이 두 곳의 전시장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유럽 4대 그랜드 아트투어 ①] 베니스, 바젤, 카셀, 뮌스터까지…유럽 미술축제 열흘간의 대장정

[편집자주] 베니스비엔날레, 스위스 아트바젤, 독일 카셀도큐멘타14, 뮌스터조각프로젝트까지…. 6월 중순 유럽에서 동시에 열린 4대 미술축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건 10년 만의 기회였다. 뉴스1은 국내 언론사 처음으로 4대 축제를 모두 돌아봤다.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을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공항을 거쳐 이탈리아 베니스섬까지. 비행기에서 비행기로, 버스에서 다시 수상버스로 교통 수단을 갈아타는 데에만 꼬박 20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격년제 국제 미술전인 '베니스비엔날레'와 세계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스위스 '아트바젤', 그리고 5년에 한번씩 열리는 독일 현대미술전 '카셀도큐멘타14'와 10년에 한번씩 열리는 공공미술전 '뮌스터조각프로젝트'까지, 유럽 4대 미술축제를 한 번에 보기 위한 '그랜드 아트투어'는 비행기와 버스를 이용한 도시간 이동은 물론, 한 도시 안에서도 하루에 무려 2~3만보의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이른바 '현대미술 순례길'이기도 했다.

6월 중순 현대미술의 격전지인 유럽에서 펼쳐진 이번 미술 행사들은 사실 유럽인들의 축제다. 유럽의 역사와 시·공간을 토대로 발전시킨 현대미술 작품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곳이지만 아시아인들을 포함한 전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며 이 시기 유럽 순례길에 올랐다.

특히 독일 중소도시 뮌스터에서 만난 한 아랍인 택시 기사의 말은 유럽인들의 잔치에 쏠린 한국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짐작케 했다. 그는 "며칠 전에도 한국인들이 택시를 빌려 조각 작품 투어를 했다"고 말했다. 4시간 넘게 소요된 투어에 한국인들이 쓴 비용은 약 270유로. 그는 뮌스터에서 벨기에까지 700유로를 내고 택시를 이용했다는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푼타델라도가나 전시공간에서 선보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볼 전시 넘치는 베니스섬…'역대급' 개인전 연 데미안 허스트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의 첫날은 베니스에 있는 주요 미술 전시장을 도는 것으로 시작했다. 푼다델라도가나, 팔라초그라시, 팔라초포루투니, 팔라초프란체티, 페기구겐하임컬렉션까지 하루 동안 5곳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구찌·생로랑·발렌시아가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거느리는 프랑수와 피노 PPR그룹 회장의 현대미술 컬렉션 미술관인 '푼타델라도가나'와 '팔라초그라시'에서는 '현대미술 악동'으로 불리는 영국 출신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 전시는 해저 난파선에서 건져올린 듯한 보물들과, 그 보물들을 발굴하는 지난 10년간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콘셉트로 꾸며졌다.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대형 조각상 및 보물들을 전시하고, 바로 옆에선 발굴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의 조각과 사진들은 실은 진실과 허구를 넘나든다. 특히 높이 18m가 넘는 조각 작품 '그릇을 들고 있는 악마'(Demon with Bowl)는 팔라초그라시 전시장 천정을 뚫을 듯한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청동 조각처럼 보이지만 실은 레진에 색을 칠한 작품이다.

삶과 죽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허스트가 제프 쿤스 등과 함께 현대미술의 거장이면서 동시에 '사기꾼'으로 불리는 이유를 말해준다. 어쨌거나 전시 규모는 가히 '역대급'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팔라초포루투니(Palazzo Fortuni)에서 열린 기획전 '인튜이션'(Intuition). 전시장 초입에 장 미셸 바스키아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이탈리아 베니스의 팔라초포루투니에서 열린 기획전 '인튜이션'전에 한국작가 김수자의 작품이 소개됐다.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인 이 작품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마음의 기하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에서 먼저 선보인바 있다.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팔라초포루투니에서는 '직감'(Intuition)이라는 주제로 기획전을 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전시장 초입에서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회화 작품 한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르셀 뒤샹, 윌렘 드 쿠닝, 막스 에른스트, 엘 아낫수이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빼곡한 이 전시장에서 김수자, 박서보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팔라초프란체티에서 열린 '글라스트레스'(Glasstress)전은 유리공예 작품들을 보여주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위성 전시 중 하나다. 아이 웨이웨이, 우고 론디노네, 폴 매카시, 토마스 쉬테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현대미술가들이 유리를 주제로 한 신작들을 선보였다.

이 밖에 페기구겐하임 컬렉션도 베니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 공간이다. 미국 철강업계의 거물이자 구겐하임재단의 창립자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인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은 20세기 전설적인 미술품 수집가로 꼽힌다.

알렉산더 칼더, 콘스탄틴 브랑쿠시, 살바도르 달리, 윌렘 드 쿠닝, 마르셀 뒤샹, 막스 에른스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바실리 칸딘스키, 호안 미로, 잭슨 플록, 마크 로스코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 300여 점을 이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글라스트레스 전시에서 선보인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글라스트레스에 전시된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유리 작품.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미국 작가 폴 매카시의 유리 작품. 2017.6.12/© News1 김아미 기자

투어 이튿날은 베니스비엔날레 관람으로 이어졌다,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는 각 국가들이 직접 큐레이팅을 맡은 국가관 전시와,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크리스틴 마셀 프랑스 퐁피두센터 수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본전시로 나뉜다.

자르디니 공원에서 펼쳐진 국가관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독일관과 세계적인 미술 매체들이 '꼭 봐야할 전시'로 잇달아 꼽은 한국관, 그리고 오스트리아관, 미국관, 호주관, 프랑스관 등이다.

특히 유리로 된 전시장 바닥 아래서 퍼포먼스 배우들이 다양한 몸짓을 펼치는 독일관 참여작가 안네 임호프의 작품 '파우스트'도 호평을 받았지만,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를 연상케 하는 네온 파사드 작업으로 국가관 외관을 장식한 한국관 참여작가 코디최의 '베네치아 랩소디'는 세계 유수 매체들이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내세우며 앞다퉈 소개하기도 했다.

아르세날레에서 진행된 본전시 경연장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주제인 '예술만세'(Viva Arte Viva)로 정확하게 수렴됐다. 다양한 소재와 매체를 이용한 각 국가 대표작가들의 작업은 일단 아름답고 경쾌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전시장과 소장 욕구를 부추기는 전시 작품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닿아 있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이 엔위저가 총감독을 맡았던 2년 전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가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무거운 톤으로 담아냈던 것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다. 다만 때로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방식으로 현대미술 담론을 이끌던 비엔날레의 위상이 예년에 비해 축소된 건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이 밖에 최근 서울역 광장에 등장해 논란이 됐던 공공미술 작품 '슈즈트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 비엔날레 본전시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낡은 신발과 식물이라는 비슷한 소재와 형태의 미술작품이 미술관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전시될 때, 각각의 작품이 받아들여지는 지점이 다름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중 미국관 참여작가인 마크 브래드포드의 공간 설치작업을 관람객들이 올려다 보고 있다. 2017.6.13/© News1 김아미 기자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전경. 스위스 출신 작가 줄리앙 차리에르(Julian Charrière)의 작품 'Future Fossil Space'. 아크릴 컨테이너 조각물에 볼리비아의우유니 소금호수에서 얻은 소금 결정체를 재료로 사용했다. 2017.6.13/© News1 김아미 기자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소개된 모나코 출신 작가 미셸 블라지(Michel Blazy)의 설치 작품 'Collection de Chaussures'(2015~2017). 최근 서울역 광장에 설치돼 논란이 됐던 공공미술 작품 '슈즈트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2017.6.13/© News1 김아미 기자

◇상업성과 예술성 '두 토끼' 쫓는 아트바젤…볼프강 틸만·빔 델보예 전도 눈길

베니스에서 스위스 바젤로 이어진 아트투어 역시 '아트바젤'과 바젤의 주요 미술관들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채웠다. 바젤 체류 이틀 동안 아트바젤의 주 전시 부문인 '갤러리즈'(Galleries)와 하이라이트 기획전 '언리미티드'(Unlimited), 그리고 주요 미술관 전시들을 모두 둘러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아트페어의 본고장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바젤은 단순히 작품을 사고 파는 시장의 역할을 떠나 상업성은 물론 예술적 담론을 이끌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했다. 언리미티드전은 특정한 재료와 형태, 규모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가들을 앞다퉈 소개하는 각축장이었다.

특히 올해의 베니스비엔날레와 아트바젤은 각각의 미술축제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뒤바뀐 듯한 인상을 줬다. 현대미술 담론을 이끌어야 할 베니스비엔날레가 시장에서 잘 팔릴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마케팅'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가 하면, 아트바젤은 작품 판매가 주 목적인 상업적 아트페어임에도 불구하고 '저 작품이 과연 팔릴 수 있을 것인가' 의문마저 들게 하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품들을 대거 출품했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바젤에 일찍 찾아 온 크리스마스'(Christmas comes early to Basel)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혹은 크리스마스 연휴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언리미티드전 작가들의 작품 6점을 간추려 소개했다. 그 중에서 천정에 말풍선을 가득 채운 설치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프랑스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의 'Fraught Times'(2017)는 영락없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인데, 실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소재로 채색한 작품이어서 '반전'을 안겼다.

중국 작가 쏭동의 설치작품 'Through the Wall'(2016) 앞에서는 관람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후통'(胡同)이라 불리는 중국 베이징의 오래된 거리에 있던 주택들의 부산물로 만든 대형 조형물 내부를 거울과 조명으로 가득 채워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위스 아트바젤 '언리미티드'전에 출품된 인도 출신 작가 수보드 굽타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 'Cooking the World'(2017). 알루미늄 그릇들로 만든 집 형태의 거대한 조형물 속에서 하루 네 차례 관람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2017.6.15/© News1 김아미 기자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가 선보인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 'Cooking the World'(2017) 역시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알루미늄 그릇들로 만든 집 형태의 거대한 조형물 속에서 하루 네 차례 관람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는데, 이미 초반에 예약이 마감돼 다른 방문객들은 조형물 안에서 풍겨져 나오는 음식 냄새를 맡으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갤러리즈 부스에서는 취리히, 런던, 서머셋, 로스앤젤레스,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아트파워' 1위 갤러리 하우저&워스가 녹슨 스테인리스 스틸을 재료로 한 리처드 세라의 평면 부조 작품 '무제'(1975)를 비롯해, 폴 매카시의 'Pot Head'(2009/2017), 로나 심슨의 유리·청동 조각 'Tried by Fire'(2017) 등을 출품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와 PKM갤러리가 갤러리즈에 부스를 냈다. 국제갤러리는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김용익, 양혜규, 알렉산더 칼더 등의 작품을 내 놨고, PKM갤러리는 이불, 전광영, 코디최, 올라퍼 엘리아슨 등의 작품을 출품했다. 특히 PKM은 자개를 이용한 이불 작가의 신작 '무제'(Willing To Be Vulnerable, 2017)를 선보여 서양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아트바젤 언리미티드전에서 소개된 줄리앙 차리에르의 2채널 영상 작업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Objects in mirror might be closer than they appear). 2017.6.14/© News1 김아미 기자

스위스 출신의 젊은 작가 줄리앙 차리에르(Julian Charrière·30)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와 아트바젤 양쪽에서 주목받았다.

차리에르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서는 아크릴 컨테이너 조각물에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호수에서 얻은 소금 결정체와 스마트폰 배터리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 금속 리튬을 재료로 한 조각 작품 '미래 화석 공간'(Future Fossil Space)을 선보였다. 또 아트바젤 언리미티드전에서는 독일 작가 줄리어스 본 비스마르크와 함께, 커다란 사슴의 눈에 나사(NASA)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폐허 이미지를 담은 2채널 영상 작업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다'(Objects in mirror might be closer than they appear)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알렸다.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인 크리스틴 마셀과 아트바젤 언리미티드전을 기획한 큐레이터 지아니 예처로부터 동시에 선택받은 이 서른 살의 작가는 은유적인 조각과 영상 작품으로 오늘날 사회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스위스 아트바젤의 하이라이트 전시 '언리미티드'전에 출품된 미국 팝아트 거장 존 발데사리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 'Ear Sofa'(2009/2017). 2017.6.15/© News1 김아미 기자

아트바젤이 열리는 기간에 맞춰 스위스 바젤의 주요 전시장에서도 기획전이 잇따랐다.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에서는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의 전시를 비롯해 재단의 소장품들을 전시하고, 팅겔리미술관에서는 돼지 등 동물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등 '문제적' 작품으로 유명한 벨기에 출신 작가 빔 델보예의 개인전이 열렸다.

특히 움직이는 조각물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로 꼽히는 스위스 조각가 장 팅겔리(1925-1991)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팅겔리미술관은 매년 아트바젤 기간 조각·설치작가의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빔 델보이의 유년시절 드로잉을 비롯해, 배설물이 나오는 과정을 재현한 설치작품 '배변기계'(Cloaca quattro, 2004-2005) 등을 전시했고, 돼지 대신 직접 몸에 문신을 한 사람이 미술관 한 쪽에 부동 자세로 앉아있기도 했다.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미술관에 전시된 볼프강 틸만의 사진 작품으로, 이번 전시 도록의 표지를 장식했다. 2017.6.14/© News1 김아미 기자

스위스 바젤 팅겔리미술관에 전시된 빔 델보예의 작품 '배변기계'(Cloaca quattro, 2004-2005). 작품 근처에서는 무척이나 익숙한 '냄새'까지 풍긴다. 2017.6.14/© News1 김아미 기자

◇독일, 세계 현대미술의 '아젠다'를 이끌다

5년 주기의 카셀도큐멘타와 10년 주기의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동시에 열린 올해, 독일은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에서 안네 임호프가 참여한 독일관과 본전시 참여작가인 프란츠 에르하트르 발터가 각각 '황금사자상'을 휩쓸면서 오늘날 세계 현대미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확실히 보여줬다.

카셀과 뮌스터에 앞서 들른 곳은 프랑크푸르트. 바젤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버스로 약 5시간을 달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헤센주 프랑푸르트암마인에 있는 슈테델미술관이었다.

1817년 저명한 은행가이자 수집가였던 요한 프리드리히 슈테델(1727-1816)의 재산과 수집품 기부를 토대로 설립된 이 미술관은 14세기 작품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총 2700여 점의 회화와 600여 점의 조각, 드로잉과 판화 약 10만 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다. 부설 미술학교인 슈테델슐레는 최근 한국 작가 양혜규가 순수미술학부 정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슈테델미술관에는 보티첼리의 '시모네타 데 베스푸치'(1480년경)를 비롯해, 라파엘로의 '교황 율리오 2세의 초상'(1511년경), 램브란트의 '눈을 잃은 삼손'(1636), 티슈바인의 '캄파냐에서의 괴테'(1787) 등 수백년 역사를 지닌 걸작들이 전시돼 있었다. 여기에 드가, 르느와르, 마네, 샤갈, 피카소까지 교과서에서 익히 봄직한 유럽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했다.

독일 슈테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티슈바인의 작품 '캄파냐에서의 괴테'(1787). 2017.6.16/© News1 김아미 기자

카셀과 뮌스터에서 열린 미술축제 관람은 이번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의 정점이었다. 빠듯한 여정 탓에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도 주요 전시장 2~3곳 밖에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도시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올해 도큐멘타는 그리스 아테네와 독일 카셀에서 잇달아 열렸다. 지난 4월 주 전시장인 프리드리히 광장의 프리데리시아눔 미술관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며 축제의 시작을 먼저 알렸다. 이탈리아 로마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니엘 노어의 공공미술 작품 'Expiration Movement'인데, 이 작품은 카톨릭의 새 교황 탄생을 알리는 '콘클라베'와 동시에, 1933년 베를린에서 자행된 나치 정권의 '분서갱유'를 동시에 은유했다.

독일 카셀에서 열린 현대미술 축제 '카셀도큐멘타14'의 주 전시장인 프리드리히 광장의 프리데리시아눔(Fridericianum) 미술관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카톨릭의 새 교황 탄생을 알리는 '콘클라베'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은 이탈리아 로마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니엘 노어(Daniel Knorr)의 작품 'Expiration Movement'다. 2017.6.17/© News1 김아미 기자

'모던 아트'를 퇴폐의 소산으로 치부했던 독일 나치정권의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작용으로 1955년 출범한 도큐멘타는 급진·전위적인 이상과 정신을 적극 수용하면서 오늘날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정치적인 메시지가 강력한 미술전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도큐멘타의 주제는 '아테네에서 배우기'다. 서양 고전의 근간을 이루는 신화적 그리스의 상징적 과거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디폴트 우려,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공포로 대변되는 그리스의 오늘날 위상을 다층적으로 겹쳐 보며 유럽의 이야기를 꺼낸다.

올해의 주제를 수렴하는 건 프리데리시아눔 미술관이다. 미국 개념미술가 조세프 코수스의 사진을 비롯해 파블로스, 조지 하지미칼리스, 요르고스 라즈온가스 등 그리스 출신 작가들의 작품과 아테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대거 전시됐다.

카셀 도큐멘타 주 전시장인 프리데리시아눔 미술관에 전시된 그리스 출신 작가 요르고스 라즈온가스(Yorgos Lazongas)의 작품 'Blind Painting-Alekton'(1988). 2017.6.17/© News1 김아미 기자

전세계 현대미술 흐름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권위를 갖는 도큐멘타의 올해 총감독은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이 맡았다. 그가 공표한대로, 올해 도큐멘타는 단순히 미학적 관점을 넘어서 어제와 오늘에 대한 반성을 자양분 삼아 미래로 먼저 나아가는 파격적인 작품들로 채워졌다.

독일 나치시절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난민 문제, 경제불안 문제, 자국 이기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쇼비니즘) 등, 정치 사회적으로 분열되고 불안정한 유럽의 오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자기성찰과 반성 위에서 새로운 '모던 아트'를 기록하려는 도큐멘타의 노력은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실어나르던 하우프트반호프(중앙역)를 프리데리시아눔 미술관과 함께 또 다른 주 전시장으로 쓰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독일 북서부의 대학도시 뮌스터에서 열리는 공공미술전인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유럽 그랜드 아트투어의 마지막 여정이자 전 일정 중 가장 많은 발품을 팔아야 했던 전시였다. 전시장 35곳에서 선보이는 올해의 신작들을 포함해 지난 50년 간 발표됐던 공공미술품들을 다 돌아보는 데에는 일주일의 시간도 부족할 정도다.

강산이 한번 바뀔 때마다 열리는 이 미술전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건 뮌스터 시민들이 아닌 해외로부터 날아 온 미술 애호가들이다. 뮌스터대학에 재학 중인 한 한인 유학생의 말에 따르면 정작 뮌스터 현지인들은 왜 이렇게 갑자기 관광객들이 많아졌는지 의아해 할 정도라고 했다.

뮌스터의 창립 멤버이자 2000~2012년 쾰른 루트비히미술관을 이끌었던 유럽의 존경받는 큐레이터 캐스퍼 쾨니히가 올해에도 공동 총감독을 맡았다. 뮌스터 시의 '5년제 미술전' 요구에도 불구하고 '10년제'를 고수하는 뚝심있는 이 공공미술전은 전시 내용을 개막 직전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며 보안을 유지했다.

지도 혹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SP(Skulptur Projekte)17'을 이용해 각 전시장까지 찾아가도록 해놨지만, 오류가 많아 해외 관람객들은 고사하고 현지인들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친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전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공공미술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묵직한 감동을 줬다. 10년을 기다려 미술전에 출품된 공공미술 작품들 중 일부는 시에서 매입해 영구 전시한다.

이번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는 피에르 위그, 그레고르 슈나이더, 히토 슈타이얼, 아이세 에르크만, 캠프 등의 작품이 주목받았다.

특히 지난해 문을 닫은 아이스링크 건물을 건축적으로 해체하고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생태환경으로 구축한 피에르 위그 공간 작품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교수이면서 최근 유럽 지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로 각광받는 그레고르 슈나이더가 엘베엘(LWL)미술관 4층에 구현한 공간 설치 작업은 대기하는 시간만 1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수중에 철제 구조물을 넣어 관람객들이 물 위를 걷을 수 있도록 한 터키 출신 작가 아이세 에르크멘의 작품에는 일반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지난해 이탈리아 이세오 호수 위에서 진행된 세계적인 대지미술가 크리스토의 '플로팅 피어스'(The Floating Piers)와 유사하다며 미술인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amigo@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