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도망치듯 떠났지만…그래도 놓지 않았던 건 붓과 종이"

2017.09.01

[뉴스1] 김아미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김민정 작가 (현대화랑 제공) © News1

[인터뷰]美·유럽서 활동하는 김민정 작가…26년만에 국내 갤러리 개인전

마른 체구에 남도 억양이 그대로였다. 26년만에 고국의 유력 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에 김민정 작가(55)는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간간히 사투리 섞인 농담을 던지며 좌중을 무장해제시켰다.

김민정 작가가 1일부터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종이, 먹, 그을음: 그후'라는 주제로 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고국에서 26년만에 여는 갤러리 개인전이다. 1991년 이탈리아로 건너간 후 2년 전부터 국내 활동을 재개했다.

한지 조각을 향불로 태워 겹겹이 붙이거나, 오방색 조각보를 이어 붙인 듯한 섬세한 콜라주가 그의 대표작이다. 특히 단색조의 화면에서는 국내 대표 단색화 원로 작가들의 작품들이 겹쳐 보인다.

집중과 사색, 채움과 비움 같은 작업의 결과물이 수 십년을 유럽에서 보낸 작가의 것이라고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옵아트'(Op art)의 선구자인 영국 거장 브리지트 라일리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김 작가의 몇몇 작품에서 구성적 요소들이 비치긴 하지만, 서양화와는 다른 결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한지' 때문이다. 한지는 굴곡진 그의 삶을 지탱해 온 '탯줄'같은 존재였다.

김민정 작가. (현대화랑 제공) © News1

◇암울했던 20대…화선지 뭉치들고 도망치듯 유럽으로

김민정 작가는 1962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인쇄소를 하는 아버지와 이불집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여자도 제대로 배워야 남의 집 종살이를 안 한다'는 어머니의 강력한 의지로 홍익대학교에 진학해 동양화를 전공했다. 어머니는 살아있는 마지막 '지리산 빨치산'이었다.

험한 시절, 대학생이 되어 할 수 있는 건 '데모질'이었다. 빨치산 어머니를 둔 덕에 '연좌제'에도 발목 잡혔다. 그런 그를 다시 광주로 데려온 건 아버지였다. 그때가 하필 1980년 5월이었다.

"집에만 꼭꼭 숨어 있어야 했어요. 젊은 사람들은 다 잡아간다고 했으니까요. 그때 광주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요. 그런데 그때만큼 광주 사람들이 똘똘 뭉친 적도 없었을 거예요. 가게 하는 사람들은 가진 걸 전부 공짜로 내 놨죠."

그의 20대는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입시 준비 중이던 19살 과외선생과 결혼해 첫 아이를 낳았다. 집안의 반대에도 '이 사랑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때였다. 애 딸린 유부녀 몸으로 작가로서 활동도 신통치 않았다. 결혼생활은 더욱 그러했다.

"남편에게 매맞고 살았어요. 둘째를 낳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죠.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어요. 20대에 세 번의 자살소동을 벌여야 했네요. 결혼할 때 한번, 결혼생활하며 한번, 그리고 결혼을 접으면서 한번."

그는 "여자로, 엄마로, 작가로 실패한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좌절한 그에게 의사가 "무엇이 제일 하고 싶냐" 묻자, 그는 막연히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라임 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단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독일로 떠났다. 손에 쥔 건 화선지 뭉치였다.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타국에서도 한동안은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해가 뜨면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고 했다. "화선지를 들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도" 했다. 내내 밝던 그가 순식간에 눈물을 떨궜다.

김민정, Pieno di vuoto, 2008, mixed media on mulberry Hanji paper, 50 x 50cm, 08-082 (현대화랑 제공) © News1

◇그래도 놓지 않았던 건 붓과 종이…한지를 태우며 나를 태우다

그랬던 그에게 작가로서, 여자로서 새 인생이 찾아 왔다. 밀라노 브레라 미술학교에서 유학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졸업 전부터 유력 화랑에 작품을 파는 작가가 됐다.

새로운 사랑도 찾았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자선 경매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예술애호가이자 자산가를 만난 거다. 그는 "작품 실력은 영 별로인 '선데이 작가'(주말에만 작업한다는 뜻으로 아마추어 작가들을 부르는 말)였다"고 했다.

이후부턴 작가로서 좋은 기회가 이어졌다. 이탈리아, 스위스, 중국, 영국, 미국, 이스라엘 등에서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폰다치오네 팔라초 브리케라시오, 덴마크 코펜하겐의 스비닌겐 미술관 등 유럽 주요 기관에 작품도 소장됐다. 최근에는 영국박물관이 그의 작품 3점을 사들였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즈(FT)는 한국의 단색화를 소개하며 김민정 작가의 작품을 같은 맥락에서 다루기도 했다. 그는 "내 작품이 단색화인지는 모르겠다"면서도 "단색화 선생들이 하는 일을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내년 초에는 영국 화이트큐브 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예정돼 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는 현재 미국 뉴욕과 프랑스 니스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김민정 Minjung Kim, Phasing, 2017, mixed media on mulberry Hanji paper, 205 x 145 cm, 17-041 (현대화랑 제공) © News1

그는 여전히 한지에 '집착'한다.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100㎏씩 한지를 뭉치로 사들고 간다고 했다. 한지 조각의 모서리를 향과 초로 섬세하게 그을려 얻은 불의 자국들로 지난 상처를 어루만지듯 한다.

신작들은 '서예적'이다. 즉흥적인 붓질로 먹을 칠해놓고, 절제된 태우기로 살짝 어긋나게 배접한 '페이징'(Phasing) 시리즈가 그렇다. 그는 작업을 하며 여전히 '두 명의 나'를 느낀다고 했다.

"채우는 나와 비우는 내가 있는 것 같아요. 종이를 먹으로 채우는 양각의 세계에서 '충동적인' 나와, 종이를 태워가는 음각의 세계에서 '반성하는' 나 말이에요. 완전히 다른 내가 공존하고 있는 거죠." 전시는 10월8일까지 이어진다.

김민정, Phasing, 2017, mixed media on mulberry Hanji paper, 70 x 70cm (현대화랑 제공) © News1

amigo@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