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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왜 예술 하는가' 밥솥 끌며 브루클린다리 건넌 괴짜의 추억

2018.07.25

[뉴스1] 여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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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기록과 기억' 전시 전경

요절 천재작가 박이소 대규모 회고전 '기록과 기억'
"이것도 작품인가요"…가장 정직했던 작가

1984년 한 남자가 자신이 만든 검은색 밥솥을 연결한 긴 줄을 목에 걸고 뉴욕 브루클린 다리를 건넌다.

그의 본명은 박철호, 미국에서는 박 아무개를 뜻하는 '박모'(朴某)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설치미술의 선구자 박이소(1957~2004)이다. 박이소(朴異素)는 1984년 추수감사절 후 4일간 코네티컷과 뉴욕에서 단식 퍼포먼스를 벌이고 자신이 만든 밥솥을 끌고 브루클린 거리와 다리를 걸었다.


박이소는 1982년 미국 유학을 떠나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또 서양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를 작업에 투영했다.

동시대 많은 작가들이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면 그는 '왜 그리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 관념들을 비꼬거나 비틀면서도 '왜'라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정직하게 고민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들의 첫인상은 '어설픔'이고 설명을 듣고 보며 '어려우면서도 재밌다'이다.

박이소 '풀'(왼쪽)과 '호모 아이덴트로푸스'© News1

박이소는 겸재 정선의 '총석정도'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린 다소 엉성해 보이는 작품에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라고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적었다.

그는 양반들만 향유하던 문인화의 소재인 난을 의도적으로 서툴게 그리고 '풀', '그냥 풀', '잡초도 자란다'와 같은 화제를 넣어 '바보 서예'라고 부르는 등 기존 관념을 비꼬았다.

또 'DMZ 해제를 위한 실용적인 제안'이라는 제목의 부적을 만들어 "이 부적을 태워서 두 컵 분량의 물에 타서 마시면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6개국 정상에게 보내기도 할 정도로 엉뚱했다.

커피, 코카콜라, 간장으로 3개의 별을 나란히 그리거나 이 3가지 액체를 섞어 그림을 그려 각각 '쓰리 스타 쇼'와 '삼위일체'라고 이름 붙였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 "나는 구별할 수 있고 너희는 구별할 수 없음에 대한 약 올리기다"라고 악동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박이소는 서울로 돌아오기 전 해인 1994년 뉴욕에서 한동안 지속했던 '정체성 작업'을 마무리 하는 '호모 아이덴트로푸스'를 제작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살았던 곳을 떠나왔다고 느끼지 않으며 내가 있는 곳에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이소 작가노트.© News1

박이소는 생전에 200여개의 재즈 테이프를 직접 편집하고 만들고는 '난 이제부터 남은 생애 동안 이것만 들을 생각'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특히 빌리 조엘의 'Honesty'(정직성)를 한국어로 번안해 노래방 반주에 맞춰 직접 불러 녹음하고 이후 녹음한 테이프를 각목에 감아 '정직성-2' 작품을 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절한 천재 작가로 알려져 있는 박이소의 작품과 작가노트 등 그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이소:기록과 기억'이 26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박이소는 2004년 4월26일 서울의 작업실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작가의 유족들이 2014년 대량 기증한 대표작과 작가노트 21개 등 아카이브 1000여건으로 구성된 전시이다.

전시를 기획한 임대근 학예연구관은 "작가노트를 보면 박이소라는 작가의 천재성 밑에는 엄청나게 많은 백조의 발동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고치고 고쳐서 약간은 허술해 보이는 작품들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관은 "실제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을 포장하기 위해 온 업체 분들이 '이건 작품인가요'라고 계속 물었다"면서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도 대부분 관람객들은 작품인지 모르고 지나쳤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박이소가 1995년 귀국하면서 유일하게 갖고 들어온 미완성 작품 '보트'(boat)를 재현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박이소 '보트' 설치전경© News1

박이소는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한 뒤에는 브루클린 지역에서 실험적 대안공간인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해 미술계에서 소외된 이민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 리더로서 주목 받았다.

또 큐레이터,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뉴욕의 미술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미술을 뉴욕에 소개하는 여러 전시에도 참여했다.

전시는 12월16일까지.


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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