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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키덜트 전성시대…창조자 '피규어 모형사'를 아시나요

2018.07.23

[뉴스1] 최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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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동 건프라연구소 소장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건프라연구소 공방에서 건담 프라모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7.21/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예술에 가깝다"…최대 1년 걸리는 정교한 작업
"키덜트 시장에 국내 콘텐츠 부족한 점은 아쉬워"


"피규어는 완구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예술품에 가깝죠."

고가의 피규어 표면이 거침없이 갈려 나간다. 반질반질해진 표면 위로 서페이서(차폐막)가 덮이고, 그 위에 색이 여러 겹으로 칠해진다. 도색이 마르면 마감작업이 이어진다. 흠집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꼼꼼한 검수를 거치면 마침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피규어가 탄생한다.


'키덜트'(Kids+Adult) 시장이 1조원대에 육박하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피규어=장난감'이라는 공식은 깨졌다. '덕후'라고 놀림거리가 됐던 키덜트들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서슴없이 지갑을 여는 유통업계 '큰 손'으로 통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한 '2017 캐릭터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산업 매출액은 2012년 7조5176억원에서 2016년 11조662억원으로 연평균 10.1%씩 성장했다. 바야흐로 '키덜트 전성시대'다.

피규어 수요도 꾸준히 늘면서 전에 없던 이색직업도 생겨났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피규어를 창조하는 '모형사'(모델러·modeler)들이다.

이성동 건프라연구소 소장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건프라연구소 공방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7.21/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이성동 건프라연구소 소장 "취향에 집중하는 시대가 왔다"

2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건프라 연구소'에서 만난 이성동 소장(39)은 자신을 '전업 모델러 겸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했다.

공방(작업실) 건담 피규어 수십개가 곳곳에 늘어서 있다. 하나같이 '장난감'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탁자에서는 모형 강습을 받는 연습생들이 프라모델을 한가득 쌓아놓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소장은 온라인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일반인에게 모형 제작 강습을 하는 전문 모형사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의뢰받은 피규어 제작도 주 업무다.

이 소장은 "어린시절부터 좋아했던 건담 피규어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모델러를 시작했다"며 "한국에는 모형기법을 교육하는 기관이 없어 인터넷을 뒤지며 나만의 기술을 터득하며 배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피규어는 고도로 세심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완성된다. 제작의뢰가 들어오면 표면정리→사페이서 작업→본 도색→먹선작업→데칼작업→마감작업을 거치는데 이 소장은 "이 과정 중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몇 번이든 재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과정마다 품도 많이 든다. 이 소장은 "피규어의 색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밑 도색 작업이 달라진다"며 "만약 의뢰인이 킷(kit·조형)에 없는 새로운 형태를 원한다면 그에 맞춰 제작을 한다. 제작기간은 짧으면 1주일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피규어가 탄생한다. 이 소장은 "10~2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의 공임비(제작비)가 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피규어 제작을 의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아직 키덜트를 낯설어하는 인식에 대해 "결국 누구나 오타쿠"라며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그 분야의 오타쿠인데, 피규어를 수집하는 것만 색안경을 끼고 볼 이유는 없다"고 전했다.

이성동 건프라연구소 소장(왼쪽)이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건프라연구소 공방에서 건담 프라모델 제작 수업을 하고 있다. 2018.7.21/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부업형 모형사'도 눈길…"피규어=장난감 인식 변해"

취미로 모형제작을 하면서 부수입을 올리는 '부업형 모형사'도 있다. 경상북도 구미에서 모형제작을 하는 한승희씨(40)는 4년 전 산 건담 프라모델을 계기로 모형사를 부업으로 삼았다.

주로 개인 의뢰를 받아 작업한다는 한씨는 꼼꼼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취미생활 겸 모형사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작품을 본 네티즌들 '한씨의 손을 거치면 피규어가 예술품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씨의 작업도 전문가 못지않다. 각종 도료와 에어브러쉬, 스프레이 부스까지 갖춘 그는 피규어 면 정리부터 재도색, LED설치와 웨더링(weathering·풍화작용)까지 표현한다. 실력을 인정받아 해외 피규어 전시회나 국내 '키덜트&하비 엑스포'에도 작품을 출품할 정도다.

한씨도 "피규어를 장난감으로만 여기는 인식이 변하고 있다"며 "캐릭터 산업이 커지면서 피규어 수집을 취미로 하는 키덜트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부업형 모형사'로 일하는 한승희씨(40)가 작업실에서 잠수함 피규어를 제작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한씨가 완성한 피규어 작례(한승희씨 제공)© News1

◇키덜트 시장 성장하지만…"국내 콘텐츠·브랜드 적어 아쉬워"

키덜트 시장이 커지면서 전국 곳곳에 '키덜트 존', '캐릭터 박물관'이 등장하고, 피규어를 콘텐츠로 한 유튜브 채널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모형사들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 콘텐츠나 브랜드가 없어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이 소장은 "피규어를 콘텐츠로 모형제작이나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결국 일본 피규어를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만의 피규어 브랜드나 콘텐츠가 없는 점이 가장 아쉽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출신의 뛰어난 원형사(피규어 원형 제작자)가 해외 제작사에 고용돼 외국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7 캐릭터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캐릭터산업은 연평균 10.1%씩 성장하고 있지만, 산업 종사자 대부분이 유통과 제조업에 치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씨도 "프라모델의 제작사 대부분이 일본이나 독일, 중국에 집중돼 있다"며 "국내에도 피규어 제작사가 있긴 하지만 소수에 불과해 다양한 수집활동을 하려면 해외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dongchoi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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