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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최명윤 교수 "위작 제대로 밝히는 것이 미술시장 살리는 길"

2017.08.14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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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인 최명윤 명지대 명예교수가 8일 서울 평창동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7.8.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인터뷰] 9월 사단법인 한국미술과학연구원 개관
'이우환 사건'부터 '이중섭·박수근 위작사건' 등 감정

"쌈닭이요? 허허 글쎄요. 제가 쌈닭처럼 보입니까?"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로 12년만에 종결된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에서 감정에 참여해 위작 결론을 냈던 최명윤 명지대학교 객원교수(70)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겸 연구소에서 만났다. 최 교수는 이중섭, 박수근,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위작과 관련한 법정공방에서 '과학적 감정'에 기반해 '위작'을 주장한 탓에 미술계 일부에서 '쌈닭'이라는 '칭찬 반 조롱 반' 별칭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는 "싸움하려고 덤볐으면 내가 먼저 위작을 문제 삼았어야 했는데 그런 적은 극히 드물었다"며 "방어하려고 했던 것들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모양"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최 교수는 오는 9월 사단법인 한국미술과학연구원 개관을 앞두고 있다. 10년 가까이 평창동 자택 건물 1층에서 국제미술과학연구소를 운영해 왔던 그는 지난해 이맘때 쯤부터 한국미술과학연구원 개관을 위한 준비를 했고, 사단법인과 관련한 모든 행정적 절차를 최근 마무리했다.

신설하는 한국미술과학연구원은 고려대학교 인근 7층 짜리 신축건물 1층에 입주할 예정이다. 최 교수의 제자이자 독지가인 건물주가 최 교수에게 무료로 공간을 내줬다고 한다. 9월 쯤 개관해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착수할 예정이다. 연구팀 직원은 5명 정도로 윤곽을 잡았다. 미술사부터 물리학 분야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감정에 필요한 인력을 채울 계획이다.

한국미술과학연구원에서 가장 먼저 착수할 사업은 감정 전문가 교육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 추진하고 있는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안'(미술품 유통법)에 '국립미술품감정연구원' 설립(안 제36조)이 포함돼 있지만, 현재 국내 미술계에는 '안목감정' 외에는 과학적 접근 방법을 접목해 감정을 할 사람이 없으니 당장 이와 관련한 전문가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 근현대 미술 관련 자료들도 한국미술과학연구원을 통해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갈 예정이다.

최명윤 교수가 1990년대 자신이 복원을 맡았던 천경자 화백의 1940년대 작품들을 도록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2017.8.8/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미인도 한 점으로 천경자 화백의 위상이 달라질까요"

최 교수의 연구소 책상에는 최근 경매회사로부터 보존 의뢰를 받은 임옥상 화백의 1970년대 자화상 작품이 놓여 있었다. 감정 전문가이기에 앞서 보존 전문가인 그는 한국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수정·복원 작업을 다수 해 왔다.

최 교수는 고(故) 천경자 화백의 그림 서너 점도 복원한 인연이 있다. 천 화백이 1990년대 초반 쯤 '조부'(1942년작), '노부'(1943) 같은 그림의 복원을 최 교수에게 맡긴 것이다.

그는 천 화백과 관련, 오랜 시간 진위 논란을 끌었던 '미인도'가 검찰로 넘어가 '진품' 결론이 난 것에 대해 여러모로 아쉬움을 표했다. 진위를 떠나 감정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는 먼저 미인도와 비교하기 위해 동원됐던 진품 '대조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진품이라고 내 놓은 대조군들 중에도 애매한 게 있어요. 모두 다 진품이 맞느냐는 부분도 그렇고, 후에 복원이 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든요. 또 천 화백 그림 중에서 초상화와 풍경화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조사하는 것도 감정을 위한 선행조건이고요. 그런데 미인도 감정 과정에는 그런 게 없었죠."

최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미인도에 대한 생각은 한결같다"고 했다. 위작이 수십 점이면 몰라도 단 한 점의 그림만으로 작고한 천 화백의 위상이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다. 천 화백은 '내 그림이 아니다'라는 말만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버렸고, 진위를 주장하는 양측 모두 증거를 갖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다, 이젠 사법당국마저 진품으로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미인도의 진실이 과연 이제와서 밝혀질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유족 측이 가짜임을 입증할만한 자료를 갖고 있는 것 만큼이나, 진품을 주장하는 미술계 쪽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어요. 이제 와서 미인도를 문제 삼는다고 문제가 삼어지겠느냐는 말입니다. 미인도 한 점이 진품이 된다고 천 화백의 작가적인 능력이 추락하는 것도 아니고, 가품이 된다고 작가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 개인적인 바람은 미인도가 그냥 잊혀졌으면 좋겠어요."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인 최명윤 명지대 명예교수가 8일 서울 평창동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7.8.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12년만에 결론 난 '이중섭·박수근 사건'…그 많은 위작 이제 어디로

최 교수는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에 대해서는 '미인도'와는 다른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2013년 1월 항소심 판결 이후 4년 6개월만에 대법원 결론이 난 것에 대해 "도대체 그동안 뭘 검토했기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느냐"는 것이다. "대법원 발표 내용을 보면 하급심에서 판결했던 것에서 한발짝도 벗어난 게 없는데 이렇게 오래 걸려야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고 일갈했다.

무려 2800여 점이 가짜로 판명된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은 2005년 이중섭 화백의 아들 이태성씨가 아버지의 그림을 국내 한 경매회사에 내놓으면서 발단이 됐다.

☞참조 본지 2017년 7월28일자
미술판 희대의 사기…'이중섭·박수근 위작사건' 12년의 기록

위작을 주장했던 최 교수는 이중섭·박수근 작품 소장자인 유족 및 김용수 한국고서연구회 고문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을 당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김 고문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박수근 그림 2800여 점에 대한 검찰의 인지수사가 시작됐고, 이에 대한 형사 재판에서 최 교수는 모두 위작임을 입증했다. 2007년 당시 검찰에 제출했던 '김용수 소장 박수근·이중섭 그림의 실체규명 보고서'는 현재까지도 대학 강단에서 자료로 쓰이고 있다.

최 교수는 "대법원 판결 이후도 걱정"이라고 했다. 2800여 점 중 160여 점만 이번 사건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은 피고인에 대해 이중섭·박수근 그림 중 판매 목적으로 전시하려고 했던 실질적인 '행사'의 대상 160여 점에 한해 '사기 및 사기미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최 교수의 걱정은 160여 점 이 외의 그림들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는 어떻게 할거냐는 거죠. 위작이라도 소장자에게 재산권이 있으니 돌려보내 질텐데, 그 가짜들이 언젠가 다시 시장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 있나요.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압수한 2800여 점 외에도 2000점 정도가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어요. 그만큼 이중섭·박수근 위작이 많다는 거죠. 엽서 크기만한 이중섭 작품이 당시만 하더라도 8000만원 쯤에 거래가 됐는데 2800점이면 도대체 돈이 얼마입니까."

최 교수는 "이 싸움을 계기로 감정에 필요한 과학을 무장하게 됐다"고도 했다. "명문대 화학과 출신인 피고인 쪽이 과학적으로 문제를 삼으면 최 교수 역시 과학으로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감정에 있어서 과학이 보조수단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결정적인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 사건이 그렇게 동기를 부여했죠. 그러나 화학으로만 얘기하면 미술 전공자인 나보다 그들이 훨씬 나을 수 있을지 모르나 화학물질이 그림으로 변하는 순간 그들은 제게 질 수 밖에 없었어요."

지난해 11월 15일 오전 서울 중랑구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경찰이 위조화가가 만들어낸 이우환 화백의 위작을 살펴보고 있다.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날 이 화백의 그림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등 약 40점을 위조한 혐의로 위조화가 박모씨(56) 등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2016.11.1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이우환 화백이 재판에 나와서도 진품 주장한다면…"

최 교수는 이중섭·박수근 위작 사건뿐 아니라 최근 재판이 진행 중인 이우환 위작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검의 수사 과정에 참여해 위작임을 증명하는 과학적 감정의 증거들을 제시했다. 미술품을 놓고 진위 논란이 뜨거운 사건들마다 이해관계 당사자들과 맞서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에게 협박 전화는 다반사였다.

"협박 많이 받았죠.(웃음) 가령 누군지도 모르는 전화가 와서는 '네 딸이 어디에 살더라' 하면서 가족을 들먹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너한테 생기는 게 뭐냐'고 다그치기도 해요. 제일 많이 받은 협박은 '밤길 조심해라'죠."

이우환 위작 사건과 관련해서는 2개의 위조단이 붙잡혔다. 첫번째 위조단은 최근 1심 판결이 내려졌고, 두번째 위조단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 교수는 첫번째 위조단의 재판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해 압수된 그림들이 왜 위작인지를 설명했다. 그는 "이우환 화백이 재판에 출석해 자신의 그림이라고 계속 주장한다면, 그 그림이 이우환의 것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나와 설명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단순히 위조범들이 실형을 받는 것보다 위작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더 많다고 했다. 이우환 위작을 진품으로 감정한 전문가들이 공식적인 사과나 해명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미술품 감정을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위작을 판매한 유통업자들은 '모르고 팔았다'며 번번이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건 종결 후 위작이 다시 시장에 풀리는 게 문제"라고 했다.

"첫번째 위조단이 약 50점을 위조했다고 했어요. 두번째 위조단은 80점 정도를 위조했다고 했고요. 위조단들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최소 130점의 위작이 존재하는 셈이에요. 경찰이 압수한 것 외에 나머지 그림들 다 어디에 있고 어떻게 될 것인가 말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위작을 진품으로 감정한 미술계 쪽의 반성도 촉구했다. 또 위작 판매를 주도 혹은 방조한 유족이나 미술계 모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체부의 '미술품 유통법'에 더욱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체부 장관이 국회의원 출신이니 희망을 가져볼만 하다"고도 했다.

"누굴 죽이자고 법을 만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 법이 만들어진다고 왜 화랑이 위축됩니까. 진짜 그림, 올바른 그림 팔면 되는 거죠. 시장에는 늘 가짜가 존재해요. 가짜를 못 밝히니까 오히려 시장에 혼란이 오는 겁니다. 언제라도 가짜를 명확히 밝혀낼 수 있다면 오히려 시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화랑가에서는 미술품 유통법이 규모도 얼마 안 되는 한국 미술시장을 죽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 교수는 "시장을 살려야 하는 건 맞다"고 했다.

"시장 살려야죠. 그런데 결론도 안 나는 '미인도 싸움'이 시장을 살리고 있나요. 이우환 위작들을 감정한 '전문가'들은 시장을 살리기 위해 뭘 했나요. 가짜를 진짜라고 감정한 것에 대해 잘못을 시인하긴 했나요. 화랑업계가 정부 주도의 규제 대신 '자정'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자정을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인 최명윤 명지대 명예교수가 8일 서울 평창동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7.8.8/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그동안 제대로 거르지 못했던 것들 이제부터 걸러야죠"

최 교수는 복원 전문가다. 1940~50년대 서울 시내에서 서울화방, 명미당 등 유명 화방을 운영했던 선친(최영소)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미술 재료들을 터득한 그는 홍대 미대를 다니다가 보존과학 분야로 진로를 정해 한양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를 마친 뒤 프랑스 8대학 조형미술대학원에서 유학하며 복원기술 등을 익혔다.

1998년에는 한서대에 예술품보존관리연구소를 만들었고, 2005년부터 명지대 대학원 문화재보존관리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2008년부터 국제미술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근대 화가들의 작품들을 과학적 방법에 입각해 연구해 왔다.

그는 "복원 전문가이기에 진위 감정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림 고치는 사람이 왜 감정을 하느냐는 얘기를 가끔 들어요. 그림 고치는 걸 단순한 행위로만 보면 그렇겠죠. 그런데 그림을 고치려면 우선 왜 망가졌는지 원인을 규명해야 해요. 환경적 요인 때문인지 재료적 결함인지 대상 그림을 분석해야 하죠. 그렇게 그림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들을 토대로 인문학적 분석을 접목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위 감정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는 게 미술과학연구원의 첫번째 목표이고요. "

최 교수는 정부 주도로 '이중섭·박수근 전작도록' 제작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중섭·박수근과 관련해서는 이미 미술시장에서 도록이 만들어진 상태인데다, 기존 도록들을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중섭 위작사건에 유족이 연루된 사례를 언급하며 유족 혹은 이해 당사자들이 깊숙하게 연관된 전작도록 제작에 대한 신뢰성 또한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미술계 이해 당사자들이 양심껏 해 왔냐는 문제예요. 지나온 역사에서 우리는 잘못된 것들을 제대로 못 걸러냈어요. 연구는 이권을 쥔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들이 하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신중하게 거르는 작업이 필요해요."

최 교수는 한국미술과학연구원을 만든다고 해서 처음부터 100% 진위 판단할 수 있는 기관이 될 거라고 자신하진 않았다. "미술계에 내 세대의 늙은이들은 이제 그만 빠지고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 왔던 그가 믿는 건 '젊은 세대'다.

"처음에는 판정불능도 상당수 나올 겁니다. 하지만 그게 쌓이면서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겠죠. 분석 장비도 고도화할 거고요. 제 세대에서는 안 되겠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젊은 사람들은 똑똑하니까요."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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