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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폐허 속 희망을…' 제주비엔날레 알뜨르비행장과 소녀상

2017.09.04

[머니투데이] 구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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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비행장 초입에 설치된 최평곤 작가의 대나무 조형물 ‘파랑새’. 높이 9m에 달하는 대형 설치작품이다. /사진=구유나 기자

12월 3일까지 알뜨르비행장·아라리오뮤지엄 등에서 문화예술 전시

제주에서 관광을 덜어내면 슬픈 역사가 보인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제주는 일제강점과 이념 대립의 아픔을 외로이 품은 섬이었다. 제주비엔날레는 관광이라는 주제에 문화예술을 더했다. 좋은 예술은 시·공간의 본질을 추구한다. 국내 첫 제주비엔날레가 막을 연 지금, 번듯한 전시장보다 흙먼지 날리는 밭이나 소독약 냄새 나는 낡은 건물이 끌리는 이유다.

제주비엔날레는 9월 2일부터 12월 3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제주시원도심, 서귀포시원도심, 알뜨르비행장 일원에서 진행된다.

알뜨르비행장…징용과 전쟁의 역사 품은 전시

알뜨르비행장은 ‘다크투어리즘’(인류 비극이 일어났던 현장을 둘러보는 것)의 정수이자 예술전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지역에 위치한 264헥타르(약 80만평) 규모의 ‘알뜨르’(아래 벌판)는 제주국제공항 자리에 있었던 ‘정뜨르’(들판)와 함께 군사시설로 사용됐다. 192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진행된 착공 공사에는 모슬포 지역 주민들이 대거 동원됐다. 해방 이후 인근 섯알오름에서는 제주 4·3 사건 때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다.

현재 알뜨르 부지는 국가 소유다. 국방부와 제주도는 토지를 저렴하게 임대받아 이곳에서 마늘, 고구마, 무 등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낡은 비행기 격납고와 흙과 잡초로 뒤덮인 밭의 풍경이 부자연스런 조화를 이룬다. 김지연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농사 행위를 통해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알뜨르비행장 비행기 격납고에 2010년 박경훈, 강문석 작가가 일본 제로센 전투기를 본따 만든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옥정호 작가는 제주비엔날레를 위해 무지개 색 '진지'를 제작했다. /사진=구유나 기자

이번 제주비엔날레를 맞아 알뜨르비행장에는 구본주, 임경섭, 최평곤, IVAAIU(아이브이에이에이아이유) 등 국내 작가 14명의 작품이 설치됐다. 2010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알뜨르에서 박경훈 작가의 개인 설치미술전이 진행된 적 있지만 국제 전시는 처음이다.

알뜨르비행장 초입에는 저항과 식민의 역사를 다룬 대형 설치작품이 시선을 압도한다. 최평곤 작가의 ‘파랑새’는 동학 농민군이 사용했던 죽창에서 영감을 얻어 대나무를 엮어 만든 9m 높이의 소녀상이다. 뾰족한 죽창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해 폭력적 저항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김해곤 작가의 ‘한 알’은 황금색 천으로 만든 커다란 구형 설치작품을 통해 희망을 말한다.

비행장에 있는 19기의 비행기 격납고 중 작품이 설치된 것은 8기다. 강문석 작가의 ‘기억’은 날개가 부러진 제로센 전투기를 형상화했다. 일본 해군 항공대가 태평양전쟁 때 사용한 경량급 전투기다. 2010년에 박경훈 작가와 공동 작업한 작품도 남아있다. 앙상한 철골만 남은 전투기에는 방문객들이 자발적으로 묶어놓은 리본이 나부낀다.

알뜨르비행장 설치작품은 3년간 설치돼 비엔날레 종료 이후에도 관람할 수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에서 전시 중인 구본주 회고전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 과장의 이야기-아빠 왔다'. 대표작인 '아빠의 청춘'(왼쪽), 디엔드(오른쪽), '비스킷 나눠먹기' 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아라리오뮤지엄

‘아라리오 매직’…폐건물, 문화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회색 도시’ 제주시 탑동은 지역 역사의 흥망이 담긴 곳이다. 1990년대 탑동은 뱃사람들로 북적이던 활기찬 도시였지만 2000년대 제주공항을 중심으로 신도심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은 폐관 후 버려진 영화관, 모텔, 바이크샵 건물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꾸몄다. 탑동은 문화예술 중심지로의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아라리오뮤지엄에서는 제주비엔날레와 연계해 구본주, 문창배, 김태호 작가 개인전을 개최한다. 제주 출신인 문 작가는 ‘몽돌의 노래’ 개인전(~내년 6월 10일까지)을 통해 제주 몽돌(오랜 세월 깎여 동글동글해진 돌) 사이로 흐르는 물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 회화 연작을 선보인다. 탑동시네마 건물 지하에 작게 마련된 전시장은 문 작가가 어린 시절 즐겨 찾던 바다가 있던 장소이기도 해서 몽돌의 시간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호흡’ 전(~내년 9월 30일까지)에서는 김 작가 초기~현재 단색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젠 고인이 된 구 작가의 15주기를 기념한 회고전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 과장의 이야기-아빠 왔다’(~내년 9월30일까지)는 작가를 대대적으로 재조명한다. 동문모텔∥의 낡은 기둥과 좁은 공간은 지친 샐러리맨 조각상을 기대어 놓기 안성맞춤이다. 전시장에는 구 작가가 미술을 배운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 제작한 ‘힘’(1987)과 유작인 ‘별이 되다’(2003)까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작업물 수십 점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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