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이 '예술가'에게 왜 집착했을까

2015.03.17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20세기 현대 회화에 혁명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6월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그의 작품 50점이 처음으로 전시된다. 작품 평가액만 무려 2조5000억원에 이른다. /사진제공=코바나컨텐츠

“우리는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표현해야한다. 평면은 환상을 없애고 진실을 드러낸다.”

추상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가 1943년 발표한 ‘예술에 관한 성명’에서 요약한 설명은 명료하다. 진실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이면을 다 걷어내야한다는 것이다.

그의 회화를 ‘장난스럽게’ 표현하면 2~3가지 색깔로 빚은 유치원생의 놀이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 흔히 그렇듯, 그 역시 수십년의 노력으로 일궈낸 종국의 결과물은 ‘단순함’ 그 자체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이 점에 주목했다. 잡스는 죽기 전 마지막 해에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이라는 로스코의 철학에 깊이 공감했다. 단순한 형식에서 깊이 있는 내면의 해석을 끌어내는 로스코의 접근법은 잡스의 인생관과 사업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의 초창기 시절에 해당하는 '신화의 시대' 작품 중 '지하철 팬터지'. 1940년. 캔버스에 오일. /사진제공=코바나컨텐츠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은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추모의 글에서 로스코에 대한 잡스의 특별한 호감을 언급했다. “생애 마지막 해, 잡스는 로스코를 처음 알았고 그에 대한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미래의 애플 캠퍼스 담벼락에 어떤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지 깊이 생각했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로스코의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세계 최대 미술경매회사 크리스티에서 ‘오렌지, 레드, 옐로우’(1961년)는 8416만 달러(한화 850억원)에 거래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 비싸고 희귀한 로스코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기회가 마련됐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전이 23일부터 6월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린다.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로스코 작품 50점이 전시되는데, 이 같은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전시에 오는 로스코의 작품 평가액 역시 국내 전시사상 최고가인 2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의 두 번째 변화의 시기인 '색감의 시대' 작품 중 '넘버2'. 1947년. 캔버스에 오일. /사진제공=코바나컨텐츠

◇ 로스코를 이해하는 열쇠…“색의 덩어리와 경계에 주목”

러시아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로스코는 사물의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의 그림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감정이 드러난 추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시작은 여느 화가처럼 대상을 재생하는 리얼리즘(1924~1940)의 추구였다. 이후 초현실주의(1940~1946), 과도기(1946~1949), 전성기(1949~1970)를 거쳤다.

전성기 시절의 작품은 색감과 형태가 단순함의 극치다. 위아래로 나뉘어 각각 다른 색을 갖다 붙인 듯한 유화는 너무 단순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여지를 남긴다. 그는 이 시절부터 철학, 종교 등 사유의 세계로 몰입했다.

“나는 추상미술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들의 관계에 아무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곡선과 기교도 없는, 심지어 억지 감동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의 그림에서 어떻게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포착할 수 있을까. 철학자 강신주는 색 덩어리에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덩어리 자체가 하나의 근원적 감정을 얘기하는 것이고, 색의 경계에 드러난 떨림을 보고 다시 색깔에 전염되는 반복에서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의 전성기 시절인 '황금기' 작품 중 '무제'. 1956년. 캔버스에 오일. /사진제공=코바나컨텐츠

◇ 대상에서 색으로 ‘갈등과 균형의 미학’…“아픈 위로와 치유 받을 것”

조만간 로스코에 대한 책을 발간하는 강신주는 그를 “추상주의와 표현주의의 한계 지점을 뚫으려고 했던 작가”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품의 시기적 배열에서도 두 가지 지점의 갈등과 균형을 맛볼 수 있다.

전시는 모두 5개 섹션으로 나뉜다. △신화의 시대 △색감의 시대 △황금기 △벽화시대 △부활의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는 소통과 공감, 치유다.

‘신화의 시대’(1939~1941)에선 대상이 제법 또렷하다. 인물과 사물의 객체가 선명하게 드러나 추상의 균형미를 느낄 수 있다. ‘색감의 시대’(1947~1948)는 대상은 사라지고 여러 색깔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황금기’(전성기) 시절엔 다양한 색을 줄이고 간단히 양분된 두 색깔이 조화 또는 갈등으로 향하는 듯하고, 후기 ‘벽화시대’엔 한가지 어두운 색 위주의 명상적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가 단색 중심으로 죽음과 비극을 표현한 '벽화의 시대' 작품 중 '무제'(시그램벽화스케치). 1959년. 캔버스에 오일, 아크릴. /사진제공=코바나컨텐츠

‘벽화시대’에서 드러난 단순하고 어두운 색깔의 회화 구성은 그의 사상과 철학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잣대다. 특히 1964년 휴스턴에 지어진 로스코 채플의 벽화 연작들은 종교의 순수성과 화합의 메시지, 인간의 죽음과 숙명에 관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에선 로스코 채플을 일부 재현해 어두운 색감의 회화 7점이 선보인다.

강신주는 “로스코는 유태인으로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20세기 힘든 상황을 다 껴안고 살았던 인물”이라며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50점의 작품은 모두 불편하지만, 인간의 숙명과 비극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에서 결코 값싼 위로와 치유가 아닌, 아픈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로스코 채플 이후 대부분 어두운 색감으로 채색된 후기 작품들은 죽음과 비극을 얘기하고 있지만, 로스코가 죽기 한 달 전 그린 마지막 작품은 빨강으로 그린 ‘레드’였다.

강신주는 이를 “죽음(블랙)에서 빠져나와 삶(레드)을 찾으려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197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스코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부활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마크 로스코가 죽기 한달 전 삶의 희망을 그리는 듯한 '부활의 시대' 작품 중 '무제'. 1970년. 캔버스에 오일. /사진제공=코바나컨텐츠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