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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외로운 섬'이 주는 특권…"도시와 다른 예술의 개성이 넘쳐"

2014.12.20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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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어느 카페에서도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 기타 같이 구비가 쉬운 악기들이 금세 눈에 띄어 일반인도 예술인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 제주도=김고금평기자

[제주도로 몰려드는 대중문화예술인]④일반인도 예술인이 되다…"생존 걱정없이 창작에 몰두"


편집자주|신촌, 홍대, 대학로 등 도심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개성과 예술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제주도가 문화의 대안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자본으로 잠식된 획일화된 문화예술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제주도로 속속 모여드는 대중문화예술인들. 제주도는 이들에게 개성과 창조성을 되살리는 기회의 땅일까. 과열되는 부동산 투기, 위락 시설 위주의 저질화 등 갖은 오명에도 예술인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상인도 예술인이 되는, 제주도에 안착한 이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봤다.


제주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여유가 넘친다는 것이다. 욕심이라는 잔주름을 뺀 얼굴은 서두름을 재촉하는 강요의 흔적도, 제 시간에 무언가 마쳐야하는 강박의 불안도 드러내지 않는다.

웃음과 여유가 넘치는 이들에게 예술은 일상이 되고, 일상은 예술이 되었다. 이미 예술가로 이름을 날렸든, 예술과 전혀 다른 길을 걸었든 제주도에 사는 이들은 이곳에서의 삶 자체로부터 예술의 민낯에 본능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듯했다.

작곡가 방승철(43)은 이를 ‘자본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찾는다. 올해 1월1일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그는 “예술가들은 자본에 구속되고 움직이는 삶을 불편해한다”고 꼬집었다.

“도시에서 문화의 꽃을 피우려고 하면, 기업이 유입되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 예술인들이 작품보다 생존에 신경을 써야해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예술가들은 바닥을 칠 만큼 감정선이 깊어져야하는데, 생활에 쫓기다보면 작품이 나올 리 만무하잖아요. 제주도는 그런 면에서 조금 더 풀어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셈이죠. 자연이라는 특유의 환경과 1년 월세 150만~200만원의 저렴한 비용이 생활의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니까요.”

지난해 6월 제주도로 내려온 재즈피아니스트 임인건은 제주도에 음악적 신세를 많이 졌다고 했다. 이곳을 처음 찾을 땐 멋모르고 왔다가 다음엔 아름다움에 반하고, 그 다음엔 아파서 방문하는, 그야말로 여러 감정을 만나는 산실이라는 설명이다.

“억새가 많이 핀 곳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 들에서 일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겨울 눈발 날리는 바닷가에서 만나는 해녀 등 모든 것이 창조의 원천이죠. 여기와서 오히려 예술의 샘이 더 분출하는 것 같아요.”

'외로운 섬'이 주는 특권…"도시와 다른 예술의 개성이 넘쳐"이미지 크게보기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이중섭 미술거리에는 거리 벽면 곳곳에 재미있고 독특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전문 예술가부터 일반 아마추어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개성을 뽐내고 있다. 제주도=김고금평기자

예술의 흔적이 가득 배인 곳은 서귀포시에 위치한 이중섭거리다. 제주 예술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미술 관련 작품들이 거리 좌판에 옹기종기 모여 제 색깔을 뽐낸다. 이 곳에서 만난 장원영(36)씨는 3년 전 서울에서 내려온 미술가다. 서울에선 취미삼아 캐리커처를 그렸는데, 이곳에선 생업이 됐다. 그는 “여기선 도시의 예술적 정의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많다”며 “더 다양하고 독특한 일상의 예술들이 매일 매일 쏟아진다”고 했다.

이곳 주변에선 예술의섬프로젝트도 한창 진행중이었다. 고순철 작가를 시작으로 유창훈 작가까지 도는 미술 투어엔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귀포시에만 1년에 43개 축제가 열리는 것으로도 ‘예술도시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케했다.

제주도에 넘쳐나는 카페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우연히 들어간 평범한 카페에서도 눈길이 가지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기타 등 간단한 악기 배치는 기본이고, 꽃이나 책, 공예품 등 각종 예술의 향기를 머금은 체취들이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그 때문인지 예술을 잊고 살았던 일반인들에게도 예술과 친숙해질 기회를 시시각각 제공해주는 듯했다.

소리카페 주인 강신원(왼쪽)와 아내는 2010년 제주도 이주를 결심하고, 지난해 이 카페를 열었다. 부부은 카페 운영뿐 아니라, 매주 토요일 자신이 만든 노래로 무대를 꾸린다. 제주도=김고금평기자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소리카페도 그 중 하나. 주인 강신원(47)씨는 제주도에 내려와서야 ‘늦깍이 예술인’이 된 일반인이다. 2010년 제주도 이주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혈기 넘치는 시민사회 운동가였다.

“일을 하면 할수록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작년 6월 이주를 결심했죠. 여기 오는 분들의 60%가 농사를 결심하고, 30% 정도는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차려요. 저처럼 10%는 살면서 고민하겠다는 주의죠. 결국 카페를 차렸는데, 그 일 자체가 특색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창작 과정이더라고요. 그래서 딱 두 가지만 고려했어요. 사람냄새가 나는 따뜻한 공간, 음악이 울려퍼지는 공간. 그 이상의 것들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죠.”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한라산과 오름, 올레길을 돌면서 그에게도 창작의 영감이라는게 떠올랐다. 그러면서 직접 작사도 하고, 곡도 만들었다. 내친 김에 아내까지 끌어들여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를 상기시켰다. 부부는 그렇게 음악인이 됐다.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남편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고, 아내는 피아노 반주를 곁들인다. 재미로 시작한 공연은 입소문을 타고 가끔 매진 사례를 기록하기도 한다. 강씨는 “어떤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개성을 존중받는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니 여전히 어설프지만 창작의 욕구가 거세지고 있다”며 “외로운 섬이 주는 일종의 특권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서울에서 타악기를 제조하던 윤주현(오른쪽)-이지선 부부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2012년 제주도로 내려왔다. 이들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멜로디 타악기 핸드팬 제작자가 되기위해 매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제주도=김고금평기자

축구 선수 루니의 광팬이어서 이 이름을 예명으로 딴 윤주현씨는 서귀포시 중문에 사는 악기 제조자다. 이주 전엔 서울의 사회적기업인 놀이단에서 재활용을 이용해 악기를 만들거나 멜로디가 나는 타악기를 제조해 필요한 홍대 인디밴드들에게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디자이너인 아내 이지선씨가 그림을 구상하면 남편 윤씨가 작품으로 완성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오멸 감독의 ‘하늘의 황금마차’의 마차도 이 부부의 작품이다.

부부가 제주도로 이주한 건 지난 2012년. 돈 버는 일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작업하기엔 서울이 최고죠.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환경적으로 도시는 답답해서 창작에 진도가 나갈 수 없는 단점들이 생기더라고요. 제주도에 적응한지 벌써 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을 보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돼요.”

창작의 자유를 위해 그는 여분의 일을 해야했다. 주문제작만 하는 일의 한계 때문에, 일이 없을 땐 인력사무소에도 나가거나 비닐하우스 제작에 참여한다. 그래도 이 삶의 만족도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제주도 서귀포시의 대표적인 카페 메이비(왼쪽). 카페앞엔 화원에 온 것처럼 풍성한 꽃들이, 카페안엔 쉽게 꺼내볼 수 있는 책들이 구비돼 있다. 소리카페(오른쪽) 입구에는 잊혀진 추억의 LP판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아날로그 소리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주인 강신원씨가 직접 비싼 돈을 들여 구입했다. 제주도=김고금평기자

“제주도는 한달을 살든, 일년을 살든 제주도스러운게 있어요. 그 매력때문인지, 계속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켜요.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이 핸드팬이라는 악기인데, 소리가 너무 아름답고 몽환적이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제작하고 있어요. 쇠를 얇게 늘려가면서 찾아야하는 소리라 쉽지 않지만, 제주도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하하.”

부부는 제주도의 더 진한 매력을 느끼기위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구석진 시골로 다시 옮길 예정이다. 이지선씨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 감사하다”면서도 “예술가들이 들어선 곳은 늘 자본의 영향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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