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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자폐와 정신분열이 남다른 창작 안목 키워줘"

2015.09.02

[머니투데이]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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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씨킴·65)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

[인터뷰]사업가에서 콜렉터, 그리고 작가로 우뚝 선 김창일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

"이제는 사람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좀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천안 졸부가 왜 미술을 하냐고 했는데, 이번 전시를 만들고 나니까 호불호에 대해 얘기해 주더라고요."

사업가로 시작해 미술 컬렉터로 이름을 날린 김창일(씨킴·65)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 그는 1일부터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8번째 개인전 '더 로드 이스 롱'(The Road is Long, 길이 멀다)을 열고나서야 비로소 '작가'로 인정받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김 작가'의 작품들은 공사판 건축 재료들을 자연의 섭리로 덧붙여 우연의 결과로 만들어낸 무의식의 형상이다.

"서울 공간사옥이나 제주도 아라리오 갤러리 공사장을 보면서 공사 부자재를 가지고 작품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철판 12장을 가져다가 그 위와 아래에 합판을 얹고 야외에다 뒀죠. 1년 동안 비와 바람을 맞고 햇볕도 쬐고. 그 시간 속에서 합판과 철판이 일으킨 우연들이 작품이 됐어요."

그는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들이 '운명적으로 만든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손이 의도한대로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것에 질투도 느꼈지만, 나름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시 한쪽에는 유럽에 출장을 다니며 찍었던 사진, 냉장고에 머리와 팔다리를 달아 사물 안에서 본 사람의 형상을 만든 작품도 들어서 있다. 특히 돌체앤가바나 등 명품 종이 쇼핑백 모양이지만 알고보면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각에선 시선을 떼기 어렵다.

천안터미널 사업에 손대며 사업가로 성공한 그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천안점과 서울·제주·천안·중국 상하이 등지에 아라리오 갤러리와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특히 손대는 작품마다 가치가 급상승하는 미술 투자의 귀재이자 파워 컬렉터로 유명하다. 매년 미국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전세계 파워 컬렉터 200인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소장품은 7000여 점에 달한다.

데미안 허스트, 장 미쉘 박스키아, 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그의 갤러리와 수장고에 가득하다. 지금은 천문학적인 가격대지만 2000년대 초 유행에 앞서 yBa(Young British Artists)와 독일 라이프히치 화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사들인 덕에 소장이 가능했다.

"사업할 때 벤치마킹이 필요해 전 세계의 백화점과 미술관을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작품을 보는 안목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약간 한눈을 팔기 시작했죠. 다들 극구 반대를 하는데도 감이 딱 오는 작품은 안 살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사고 나면 1년 만에 가격이 두 배로 뛰고 그랬어요."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 전시된 김창일 회장의 연작 '무제(2015)'.

그가 미술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젊은 시절 고민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자폐 성향과 정신분열증이 있던 어린 시절, 내면에 갇히면서 그는 자문자답을 많이 했다.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기에 했던 고민들은 지금 그가 구매할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전시명 '길이 멀다'는 그런 점에서 사업가에서 작가로, 컬렉터에서 작가로 가기까지의 반세기 가까운 시간의 인내성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시간과 인내의 중요성, 예술에 대한 애착 하나로 견뎌온 지난 세월에 대한 속마음을 투영한 작업이었던 셈.

그의 작품 중 '맨(man) 시리즈'는 정신분열을 앓았던 시기의 작가 세계를 고스란히 대변한다.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다 사람처럼 보여서 사물 작품이 인간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는 것.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등 여러 곳에 전시된 이 시리즈는 폐냉장고에 머리와 팔다리를 달아 사람처럼 의인화했다. 그는 "이렇게 버려진 물건들을 볼 때마다 물건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눈 여겨 볼만한 또 다른 작품은 '실상과 허상'이라는 주제를 놓고 그가 고민한 흔적이 담긴 오브제다. 곰팡이가 슬어 썩어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스티로폼'이라는 작품과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종이 쇼핑백인 작품 '쇼핑백(Shopping Bag)'은 주먹으로 두드리니 '탕탕' 소리가 난다. 스티로폼이 아니라 브론즈로 제작됐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보이는 것과 실재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시각과 촉각, 청각의 불일치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예술가는 사업을 해도 예술가야. 그런데 사업가가 예술을 하면 비웃어. 이런 세상에 반기를 들고 싶었어요." 그는 앞으로도 열심히,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기를 들며 살 준비가 돼 있어 보였다. 041-55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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