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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전설적 평론가' 유홍준 교수의 재기…"현역으로 복귀할 것"

2016.01.22

[머니투데이]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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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2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2 리얼리즘의 복권' 전 기자간담회에서 강연을 가졌다.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인터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1980년대 민중미술 알리는 전시적 참여 및 기획.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심장은 아직 1980년대의 외침으로 고동친다. 유 교수는 1993년 출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지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을 대변한 전설적 평론가였다.

이 같은 훈장을 배경으로 그는 2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2: 리얼리즘의 복권' 전 기자간담회에서 강연을 맡았다. 그는 이 강연에서 "이제는 '예비역'이지만 '현역'으로 조만간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민중미술 등 리얼리즘계열 작가전 기획에 공동 참여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권순철, 신학철, 민정기, 임옥상, 고영훈, 황재형, 이종구, 오치균 등 민중미술 등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유 교수는 "이 사람들은 대체로 전업이고 백수였으며 교수가 아니었고 화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인간으로서 사회성이 없었지만 테크닉은 귀신 같았고 정확하게 그리는 사람들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종구 작가를 소개하며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날 적 그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정말 농사꾼 ‘간지’가 그대로 살아나게 진국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는 "오는 8월쯤 인사아트센터에서 민중미술에 집중한 전시회를 기획할 것"이라며 "이들 작가, 그리고 민중미술과 움직이는 인생을 언제나 대변하겠다"고 했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진보적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 운동이자 사회변혁 운동이다. 시대와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진정한 면모에 천착한다는 의미에서 리얼리즘과도 접점을 맺는다. 민중미술은 화단을 지배한 추상미술, 모더니즘사조를 배척한 저항의 횃불이었다.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해 노동가의 삶을 알리고, 군사정권에 맞선 민주화 운동과 연대했다.

유 교수는 "과거에는 아주 예쁜 그림을 그려 파는 것이 제도권 미술이었다"며 "(80년대에) 진짜 예술성을 '팔려는' 작가들은 왜 우리의 그림이 일상을 떠나야 하느냐는 고민을 했다"고 회고했다.

유 교수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교두보인 '그림마당 민'의 운영위원장이었다. 150여명의 진보적 미술인들이 모여 만든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주도로 1986년 문을 연 상설 전시관이다. 유 교수는 그림마당 민에서 민중미술을 홍보하고, 작품을 대신 팔아 주기 위해 발로 뛰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중미술이 언젠가 반드시 후대에 높은 가치를 평가받을 것라고 애호가들을 설득했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로 국내 유적·유물에 집중한 미술사학자의 정체성을 갖기 전까지 '민중미술 투사'였던 셈이다.

유 교수는 그림마당 민에서 못 다한 숙제를 남겼다. 1986년 이곳에서 열린 첫 초대전인 목판화가 오윤(1946-1986년)씨 기획전은 성황리에 끝나며 민중미술의 기치를 드높였다. 하지만 오씨는 전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별세했다. 유 교수의 가슴 한 켠을 아직도 저미게 하는 비보다.

그림마당 민도 1994년 재정난으로 무너졌다. 유 교수는 작고한 목판화가 오씨와 그의 동료·후배가 중심이 된 '오윤과 친구들'을 자신의 전시 기획 주제로 삼고 있다.

유 교수는 그러나 흔히 규정된 민중미술의 특징에 대해 단호하게 거리감을 뒀다. 유 교수는 "그간 민중미술과 관련해 도마에 오른 작품들은 '못그린 것'들이었다"며 "조형적으로 난폭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어떤 미술 사조를 보더라도 '못 그린 그림'은 다 존재했다"고 했다.

민중미술이 이른바 '후진 미술'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정면 반박하면서 조형적으로 탁월한 작품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개인적으론 30년 된 민중미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한번 갖고 싶었다"며 "그동안 멸시 받은 것도 억울한데 (민중미술을) 띄워야겠다. 내 영혼을 바쳤다는 생각도 해 본다"고 농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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