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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main을지로, 예술가와 장인이 만날 때

2018.09.21

[머니투데이] 남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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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3가 인근 철물점이 모여있는 골목 /사진=남궁민 기자

[남궁민의 골목, 도시]저렴한 임대료·뛰어난 제작 여건에 예술가 모여…작업실 들어서며 활기

편집자주 사람을 부르는 골목의 매력은 뭘까요? 한국의 광장이 심심하고 서울에는 유독 스타벅스가 많은 이유까지, 쉽게 지나치지만 일상을 함께하는 골목과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을지로가 뜬다고? 거 참 별일이네"

50대 언저리인 선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청년 시절을 광화문에서 보낸 이는 을지로를 '한 때 잘 나갔던 동네'로 기억합니다. 산업화 시대 호황을 누리던 금속, 인쇄업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침체에 빠지면서 지금은 쇠락한 동네로 알고 있습니다. 가끔 저렴한 안주에 술 한잔 하며 회포를 풀러갈 뿐입니다.

하지만 2015년쯤부터 예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을지로 일대에 모여사는 예술가는 순수예술부터 조소, 패션, 그래픽을 아우릅니다.

비어있던 빌딩에는 작업실과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세월을 간직한 을지로에 예술가들 손길이 더해지면서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냅니다. 끊겼던 사람들의 발길도 많아졌습니다.

보석 디자이너 등 예술가가 모여 만든 카페 겸 작업실 '호텔 수선화' /사진=호텔 수선화

지난 18일 을지로3가를 찾았습니다. 요즘 핫하다는 소문을 따라왔지만 보이는 건 오래된 건물과 낡은 간판 뿐이었습니다. 거리에는 철물점에서 들려오는 쇠깎는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빌딩 3~4층에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카페 ‘호텔 수선화’, 'MWM'과 바 '미팅룸’ 등 요즘 인기라는 힙플레이스가 빌딩마다 들어서 있었습니다.

90년대에 시계가 멈춰섰던 을지로가 활력을 되찾은 비결은 뭘까요?

장인과 예술가의 만남…저렴한 임대료·교통 여건도 매력

을지로 인근 철물점 모습 /사진=남궁민 기자

1980년대까지 '을지로에서는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한국 산업화의 중심에 섰던, 뛰어난 제조 역량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는 최근 몰려든 예술가들의 작업활동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수천개에 달하는 금속 가공업체와 조명, 제지업체 덕분입니다. 철공소에서 일하고 있는 김진성씨(55·남)는 "요즘엔 작품 제작을 부탁하는 젊은 사람들도 많아졌다"며 "을지로에는 소규모 공장이 대부분이어서 소량 제작은 뭐든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십년간 실력을 쌓은 장인과 젊은 예술가가 만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또 다른 매력은 저렴한 임대료입니다. 1980년대 들어 산업화 속도가 더뎌지면서 을지로에도 그늘이 드리웠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결정타였습니다. 금속, 인쇄 산업이 기울면서 4~5층 이상의 빌딩이 가득한 을지로에는 공실이 속출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빈 건물이 많아지면서 공동화됐습니다.

임대료도 덩달아 낮아졌습니다. 을지로 주변 부동산에 문의한 결과 을지로 3가 일대 이면도로 빌딩 고층 임대료는 20평이 월 100~150만원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가까운 종각 상권의 같은 넓이의 점포 임대료인 400만원에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곳도 많아서 아예 보증금을 받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디자이너 김수현씨(28)는 "무엇보다 월세가 싸고, 비슷한 이유로 모인 예술가들이 많아서 좋다"고 강조했습니다.

영국 현대미술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의 근거지였던 런던 도크랜드에 있는 도크 오피스 /사진=위키피디아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예술가들이 모이는 현상은 한국 만의 일은 아닙니다.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 소호, 영국 현대 미술의 부흥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 예술가들이 활동한 런던 도클랜드도 버려진 공장지대였습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은 아무래도 임대료가 저렴한 곳을 찾게 된다"며 "한국 뿐 아니라 뉴욕, 런던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교통도 을지로의 매력으로 꼽힙니다. 도심에 있을 뿐 아니라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지나갑니다.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판매하는 방산시장과 동대문 의류시장도 가깝습니다. 외곽에 위치한 서울의 다른 공업지구인 구로, 문래동, 성수동보다 뛰어난 교통 여건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 우려↑…"보존과 개발 조화 이뤄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바라본 예지동 일대. 낡은 건물과 빌딩이 모여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을지로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상권이 활성화 되면서 대형 프랜차이즈가 눈독 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본과 사람이 모이다보면 을지도 고유의 매력은 줄고 임대료는 오릅니다. 재개발을 바라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큽니다. 30년째 을지로 주변 관수동에 살고있는 김영자씨(67)는 "동네가 너무 오래되서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낡은 건물도 허물고, 새로 길도 놓고 재개발 하면 좋겠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이뤄야한다고 조언합니다. 배웅규 교수는 "낙후된 지역 사정을 감안하면 마냥 개발을 막을 수도 없지만, 부작용도 최소화 해야한다"며 "금속, 인쇄, 조명업체가 모여있는 곳을 특정 산업지구로 설정해 보호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고층 개발시에는 저층(1~3층)을 기부채납 받아 상가나 작업실로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방안도 대안으로 꼽힙니다. 주민과 건물주, 입주자들이 모여 지역 개발과 보존에 대해서 논의하는 '상생 협약' 체결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예술가들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지만 역설적으로 개발은 이들을 내몰기도 합니다. 주목 받았던 상권이 어느새 그저그런 흔한 동네로 전락하는 사례가 반복됐습니다. 예술가들의 요람으로 자리잡은 을지로는 이런 비극을 피해갈 수 있을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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