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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uble['배부른' 예술] <下> 기업의 예술인 후원…日 ‘10년 이상’ VS 韓 ‘1년 미만'

2017.08.14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구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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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데미언 허스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든든한 후원자'다. 예로부터 가난한 예술가들의 재능을 믿고 이들을 후원한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메세나' 등을 통해 사적인 예술 지원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트=김현정 디자이너

[기업의 ‘스폰서’ 문화 실태]…‘10년 이상’ 후원하는 日과 3배 차이, 후원 장르도 미술과 클래식에 ‘편중’

[편집자주] 어두운 터널을 지나 민주주의 확립에 한발 들어선 시대에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배고프다’. 돈이 넘치고 매체가 늘어도 피땀 흘린 예술가들의 결과물은 되레 소외받기 일쑤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환경은 줄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더 피폐해진 예술의 권위와 예술가의 삶이 새 정부 햇볕에서 보장받을 수 있을까. 풍요의 시대에 되레 위축되는 예술가의 삶이 나아질 방안은 없는지 ‘배부른 예술’ 시리즈 2회를 통해 짚어봤다.

쓸쓸하고 퇴폐적인 음악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기 어려웠던 실험적인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빛을 본 건 전적으로 앤디 워홀이라는 스타 아티스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빈털터리 밴드의 스폰서 역할에 나선 워홀은 그 유명한 ‘바나나 앨범’ 재킷도 직접 그려 넣으며 물심양면 지원했다. 가능성을 보는 안목과 스폰서 문화가 없었다면 세계적 밴드의 출현은 물거품이 됐을지 모를 일이었다.

◇ 부유한 예술 뒤엔 스폰서 문화 존재…“기초예술 시장 키우려면…”

모네, 데미언 허스트 등 시대를 막론한 유명 예술가들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술가의 끼와 잠재력만을 평가의 잣대로 삼아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유한 개인과 기업들은 예술 부흥과 문화 산업화를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국내 예술계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엔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정부의 미온적 정책뿐 아니라, 예술을 순수하게 지원하는 스폰서 문화의 부족이 곧잘 거론된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문화 콘텐츠들은 자생적 존립이 가능하나, 연극 등 기초예술들은 여전히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스폰서 문화가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공연계 한 관계자는 “게임이나 음반은 복제가 가능해 부가가치 창출에 용이하지만, 기초예술 분야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어 수지가 안 맞는다”며 “기초예술 시장은 실패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국메세나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후원금은 인프라 투자나 미술, 클래식 분야에 집중돼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 기업 후원금, 대부분 ‘인프라’ 투자…장르 지원액은 거의 줄어

국내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기업이 직접 지원하거나, 한국메세나협회를 통해 단체를 지원하거나 정부 지원금과 매칭 방식으로 지원한다.

지난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현황 조사에 따르면 당해 기업 문화예술 지원 총액은 전년 대비 12.2% 증가한 2026억 8100만원이었다. 하지만 지원기업 수는 497개사, 지원 건수는 1463건으로 각각 18.4%, 5.3% 줄었다. 정치적 악재로 소액 기부를 하던 기업들이 기부를 철회하거나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등이 저조한 참여율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

기부금은 늘었지만, 혜택은 되레 줄었다. 기업들이 증가한 지원금 대부분을 인프라에 투자했기 때문. 인프라 지원금은 전년 대비 23.6% 증가한 1184억 8000만원으로, 총 지원금액의 58.5%를 차지했다. 기업이 세운 공연장, 미술관 운영 등에 대한 직접 지원이 증가한 셈이다.

그다음으로 미술전시(172억 7000만원), 클래식(165억 6000만원), 문화예술교육(112억 2000만원) 순이었다. 소폭 오른 미술(▲4.7%)과 문화예술교육(▲1.9%)을 제외한 다른 장르 지원은 대부분 지난해에 비해 감소했다. 무용이 35.6% 가장 크게 감소한 것을 비롯해 뮤지컬(▼23.1%), 문학(▼19.6%), 클래식(▼17.8%), 연극(▼14.1%), 영상·미디어(▼13.8%), 국악·전통예술(▼1.8%) 등이 모두 줄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찾은 한 관람객이 미술관 역대 최고가 소장품인 10억짜리 김환기의 '새벽 #'3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지원 기간 ‘10년 이상’ 18%에 그쳐…장르도 미술과 클래식에 집중

2015년 기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사업 지속기간을 보면 ‘1년 미만 신규지원’이 37.4%로 가장 높았고 △‘5년 이상 10년 미만’(18.8%) △‘3년 이상~5년 미만’(13.1%) 순이었다. ‘10년 이상 지속’된 사업 비율은 18.2%에 불과해 10년 이상 장기지원이 50%를 넘는 일본과 대조적이었다.

김옥진 한국메세나협회 대리는 “장기 지원을 하다가 대표가 바뀌면서 지원이 끊기는 경우가 있는데,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변동률이 심한 편”이라며 “지원 장르도 오너들이 흔히 선호하는 미술과 클래식에 더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인의 취향이 그나마 반영돼 지원되는 비인기 예술 장르에선 수백만 원의 후원금이 비공식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지도가 있거나 검증된 ‘소수의 단체’에 국한할 뿐이다.

김성한 세컨드네이처 댄스 컴퍼니(현대무용) 단장은 “어렵게 1000만원 정도 지원금을 따내도 최소 개런티 80만 원씩 나눠 가지면 무대는 간소해질 수밖에 없다”며 “더 좋은 의상이나 더 큰 무대를 꿈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최근 소규모 단체들을 모아 현대무용조합을 세운 김 단장은 규모가 커진 단체가 기업 지원도 더 잘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무시할 수 없는 환경도 조합 설립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문화예술계에도 '크라우드 펀딩'이 이뤄진다. 문화예술위원회 등 정부 기관부터 민간 스타트업까지 소액 후원자와 예술가를 연결시키는 플랫폼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삼천원' 홈페이지

◇ “기업 후원은 곧 투자”…또다른 스폰서 창구 탄생 ‘기대’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로 옮기면 기업의 후원은 ‘순수’라는 개념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연극에서 순수한 후원의 개념은 이미 사라졌고, 뮤지컬은 기업의 투자처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설명이다.

임선빈 드림시어터 상임 연출은 “A기업이 뮤지컬에 1억원을 후원했다면 1억원 이상의 표를 가져가는 것과 같은 얘기”라며 “후원이라는 명목하에 이뤄지는 상당수 공연이 수지에 맞는 장사인지 가늠해보는 시험대로 통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국내에서 ‘배부른 예술’은 아직 요원한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곳곳에서 가난한 예술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스폰서 창구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삼천원’은 생계 문제로 고통을 겪는 문화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소비자가 후원하고 싶은 예술가를 선택해 최소 3000원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한 달 평균 300만~500만 원 정도 지원금이 모인다.

인디스폰서는 청년예술가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스타트업이다. 류정민 인디스폰서 대표는 청년 예술가를 창업자로 보고 각종 활동을 지원한다. 장비나 무대를 제공하고 공연도 중개한다.

서우석(도시사회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업 등 민간 차원의 기부도 중요하지만, 국내처럼 스타와 팬덤이 좌우하는 예술계 속성을 고려하면 스타들이 동종 예술가를 위해 연대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실질적인 도움을 떠나서 상징적으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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