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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박현주 아트클럽] '돌 조각' 살아있는 전설 전뢰진과 제자들

2018.09.13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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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올해로 구순이 돌 조각가 전뢰진 작가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구순기념 특별전을 연다. 제자들이 뜻을 모은 전시로 사제동행전으로 선보인다. 작가의 대표 조각과 제자들의 작품이 한데 어울린 이번 전시에는 전뢰진 작가의 미공개 드로잉 100여점이 전시됐다. 대리석으로 만든 '사랑'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는 앞에는 토끼, 뒷면엔 부부가 양각된 이 작품을 가장 애정한다고 했다.

구순기념 특별기획초대전...'조각일로 사제동행'전
67년간 석조만 작업...미공개 드로잉 100점도 공개
인사동 선화랑서 20년만의 전시...12일~29일까지

12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내 최고 원로 예술가들인 대한민국 예술원회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미술계 유명인사들도 속속 들어섰다. 내로라하는 초로의 조각가들이 북적였다.

이날 400여명이 북새통을 이룬 전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최근 좀 처럼 볼 수 없던 개막식 풍경이어서 1990년대 화랑가를 연상케 했다. 당시 전시 오픈일인 매주 수요일이면 미술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누가 누가 전시한다고 하면 그 전시를 찾아 축하하고 거나한 뒷풀이가 이어져 주변 식당들도 호시절을 누렸다.

사라진 옛날 전시 개막식을 재생한 건 '돌 조각가' 전뢰진 작가때문이다. 올해로 구순(90)인 작가의 '구순 기념 특별 기획 초대전'이 열렸다. 조각가 전뢰진은 국내 '돌 조각'의 대가로 고졸미와 소박함이 어우러진 '따듯한 조각'의 창시자다.

선화랑에서 1998년 전시 이후 20여년만에 연 이번 전시는 사제지간 끈끈한 사랑으로 마련됐다.

전뢰진과 제자들은 각별하고 유별나다. 제자들이 모여 변치않고 선생님을 챙긴다. 2년전에는 전뢰진의 미수(88)를 기념하기 위해 제자들이 '전뢰진 작품집'을 발간했다.

제자들은 "전뢰진 선생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조각예술의 표본"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작품집 만드는 것 조차 만류해 어렵사리 만들었다"는 제자들은 "머리에 목에 수건 질끈 동이고 작은 체구에 무거운 돌과 싸우며 차가운 돌에 온기의 생명을 불어넣는 조각가로서 65년간 한길을 걸어온 선생님의 모습은 예술"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도 제자들이 뜻을 모았다. 선생은 전시도 책도 내는 것을 만류했지만 90세를 맞은 선생님을 위한 한 마음이었다.

'전뢰진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초대 회장은 80이 넘은 제자 김수현, 부회장은 70이 넘은 제자 고정수가 추대됐고, 강관욱, 김경옥,한진섭, 김성복, 전덕제등이 위원으로 나섰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난 5월 제자들이 선생의 옛 집을 뒤졌는데 생각지도 못한 드로잉 400여점을 발굴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에 그린 드로잉 뭉치들을 찾아냈다.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세계를 증명한다"며 "기적같다"고 했다.

이렇게 찾아낸 드로잉은 67년만에 첫 공개됐다. 전시장에는 액자에 담긴 드로잉 100여점이 걸렸다. 전시 타이틀은 '조각일로 사제동행'전. 전뢰진 대표 조각 15점과 제자 20명(강관욱, 고경숙, 고정수, 권치규, 김경옥, 김성복, 김수현, 김영원, 김창곤, 노용래, 박옥순, 박헌열, 이일호, 이종애, 전덕제, 전소희, 전용환, 정 현, 한진섭, 황순례)의 조각도 함께했다. 이날 고종희 미술사학자가 쓴 단행본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도 출간, 전뢰진 사인회도 열렸다.

개인주의로 사제지간이 무너진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이어서 이번 전시는 더욱 특별하다. 스승에 대한 '무한 존경'을 보이는 제자들과 그 제자들의 뜻을 기꺼이 받은 스승은 이날 막걸리를 연신 마셨다.

"인연은 일부러 만들수 없어. 저절로 만들어지는 거야."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12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돌 조각가 전뢰진 작가가 구순기념 특별전 기념 기자들을 만나 작업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올해로 구순인 작가는 평생 몸이 아픈 적이 없고 매일 장수 막걸리 한병 반을 마시며 건강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거친 돌을 작업하는 작가의 손은 가늘고 고왔다. 왼쪽 팔목에는 봉황 휘호가 있는 금색 시계를 찼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받은 시계라고 했다.

구순 조각가 전뢰진은 모든 것은 '인연'과 '팔자'라며 말길을 열었다. 질문을 받을때마다 두 손을 양쪽 귀에 대고 집중했다. (5학년때 같은반 친구가 귀를 찔러 피가 난후 고막이 터져서 지금도 오른쪽 귀가 덜 들린다고 한다.)

"돌 조각을 왜 하냐고? 만들어서 되어 가는게 재미있어서 좋지. 안팔려도 좋아. 내 작품이니까. "

옆에 있던 제자 조각가 한진섭은 "돌 작업하면 남의 손을 빌리기도 하는데 선생님은 아직도 여전히 손수 작업한다"고 했다.

"조수 없이 혼자하는 이유가 있나. 재미로 하는거지. 혼자하면 또 경비가 안들지. 자기가 일하면 돈이 안들잖아.허허"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

"시간은 저리 가라다. 1년 걸린다고 해서 다른 사람 주고, 돈 주고 만들고 싶지 않다. 2년을 걸려도 내가 만들고 싶다. 고집이다. 작가는 고집 있어야 돼, 똥고집."

그러면서 "인연을 저버리면 불행해진다"고 했고 예술을 하는건 '팔자'라고 했다. 또 모든 것에 '고마워'했다. "(내 작품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해줘서 더 고마워. 나를 만들어준 천지조물주가 고마워. 내가 저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수완을 준 건 하늘의 일이지. 하느님에 고마워. 그렇다고 내가 종교믿는 사람은 아니다. 괜히 또 내가 잔소리 하네. 미안해요. 허허."

-왜 돌조각만 했나

"나도 모르겠어. 인연인가봐. 하고 싶었어. 해야겠다 의무감에 한 건 아니야. 어떤 때는 하다가도 '어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어' 하면서도, 에휴 내 팔자지~그러면 마음이 가라앉아. 왜 술마시면 마음이 좋아지잖아. 그것 같애. 그래서 모든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

-브론즈나 다른 조각 유혹이 없었나.

"고생끝에 낙이 있는거지. 돌을 깨는 고생을 하면서도 보람있는 일이구나, 내가 이걸 만들 팔자구나, 잘 만들어야지 위로하면 작품이 잘돼. 싫은 거 억지로 만들면 안돼. 만들긴 만드는데 결과가 역시 나타나. 조각가가 되려고 태어났나, 살다보니까 되는 거지. 환경을 저주하면 마음이 불안해."

-돌이 왜 좋나.

"돌은 성질이 참 고와. 돌이 거칠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아니야. 연한 돌에 강한 망치를 주면 부숴져버려. 강한돌에 연한 망치를 하면 쪼아지지가 않아. 돌에 따라 강도와 속도가 달라. 그건 해본 사람이 알지, 안해 본 사람은 몰라.

-제자들이 많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제자들이 있는데, 그래도 조각을 하는 제자가 찾아와. 그게 고마운거야. 조각중에서도 (팔을 휘두르며)이거(돌조각)하는...그것이 인연인가봐."

-제자들은 왜 선생을 찾아올까.

"나를 보고 싶어서도 왔겠만, 내가 작품을 제작하고 있나 궁금해서였을거야."

-찾아오는 제자들한테 뭐라고 했나.

"열심히 해, 그러면 뭐가 돼도 돼"

-왜 조각을 하게 됐나.

"나도 몰라. 하고 싶어. 이쾌대 연구소에서 데생을 배우고 대학가서 조각을 하니까 하고 싶었어.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아진하워 대통령 방문때 선물용으로 갖고 가면서 알려졌지.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그때부터 더 조각을 열심히 했어. 인연이 있어야돼. 인연이."

-가족, 여성, 동물만 조각하는 이유는.

"몰라. 그걸 하고 싶어. 어려운 건 만들고 싶지 않고. 잘 만드는걸 만들고 싶어. 나도 모르게 만들어져. 그게 다 팔자인가봐."(모자상은 전뢰진이 가장 즐겨 그린 주제다. 전뢰진에게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일 수도, 평생 그의 곁을 지켜준 아내(김한정)일 수도 있다. 동갑의 아내는 오늘 행사를 위해 양복과 넥타이, 구두까지 챙겨줬다고 한다. 재킷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금빛 뱃지가 달려있었다.)

전뢰진은 제일 좋아하는 돌은 대리석이라고 했다. 서양 것보다 익산에서 나오는 대리석을 사용한다. "대리석은 속에 짬(결)이 없어 좋다. 화강석보다 용이해. 하다가 부러지는 경우는 없어. 화강석은 결이 있다면 눈에 안보이는데 금이 가지. 나중에 떨어진다고. 대리석은 그게 없어. 다 고와."

제자 한진섭은 "선생님 작품은 가짜가 없다"며 "정과 망치로 쪼아 나온 작품은 손 터치에 강약이 있어서 카피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현재까지 전뢰진은 돌조각 500여점을 만들었다고 한다. 67년간 1년에 5~10여점씩 탄생시킨 셈이다. 제자들은 "이 숫자는 작가 혼자 평생 작업한 결과로, 엄청난 양"이라고 했다. 단 하루도 작업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작품은 모두 팔려 나갔다고 했다

-혼자 작업하는데 손 안 아픈가. 팔은 어떤가.

"안 아파. 내가 좋아서 하는데 손이 아파, 그러면 이거 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안 아프면, 이거 해도 괜찮구나 하는거지."(손은 가늘고 고와 보였다. 만져보니 부들 부들했다.)

제자 한진섭이 부연설명했다. "사모님이 결혼후 평생 동안 아픈적을 못 봤대요. 술을 많이 드셔서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진 적은 있지만,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은 없어요. 술을 엄청 드시는데 간이 좋으신지 알코올 분해능력이 대단합니다."

【서울=뉴시스】 전뢰진作_모자상, 대리석, 20x20x23cm, 2016

막걸리 애주가로 유명한 전뢰진은 술을 의인화했다. "술은, 마시고 싶어 마시지, 아마 또 술도 나를 마시고 싶어해, 서로 합의가 돼서 마시는 거지. 나는 마시고 싶은데 술이 나를 싫어하면 안 넘어가. 써서 안 넘어가. 쟤(술)도 내가 좋으니까 마셔주는가봐. 마셔 본 사람은 알아. 술도 또 나를 좋아해요. 이상하죠? 허허. 근데 마셔봐. 그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할거야. 요즘엔 장수 막걸리를 1병반만먹어. 전에는 3병을 마셨어. 나이는 먹는데 술 양은 줄어. 다 그럴거야."

-'선생님은 술만 빼면 성자'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들 얘기하는데, 술을 마시는게 더 좋다 이거야. 성자가 되는 거보다 술 마시는게 더 좋아. 술을 근심스럽게 마시면 건강에 안좋을 걸. 기분좋게 마시면 소화가 잘 되는 거 같아. 아, 술은 작업 끝나고서 마셔야지. 잘한 것 같은데 어딘지 서툴러. 술 먹고 하면 작품도 안돼고. 마셔 본 사람이 알지."

-선생과 약주를 함께하지 않으면 좋은 제자가 될수 없다고 하는 말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나한테 올때는 전 교수가 술을 하겠지. 나도 곁들어서 술을 해볼까라는. 술 생각 안나는 제자들은 오기 어려워해 내가 자꾸 주니까. 선생이 주는 술 안받아 먹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내가 나쁘지. 알면서도 자꾸 주게돼. 첫째는 주고 둘째는 안주면 마음으로 섭섭해. 그렇다고 싫다고 자꾸 주는 사람은 아니야. 술이 왜 술인지 알아? 술술 넘어가서 술이잖아."

-제자들 전시는 평생 빼놓지 않고 다녔다.

"제자들에게도 보람이 있고 나도 가야 마음이 시원해. 안가면 숙제가 남은 것같고 미안하지. 가지못할 사정이 생기면 할수 없구나, 운명이구나 라고 생각하지만 일부러 안 갈수는 없지. 중간에 가면 작가는 보지 못해도 보고 오면 마음이 후련해. 내 생각에는 평생 지킨거야."

제자들은 선생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크신 분이다. 악의가 없고 질투가 없다. 선생을 댁까지 모셔다드리면 꼭 택시비를 주셨으며 받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으셨기 때문에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한다. 한번도 흔들림이 없었고 남의 삶을 기웃거리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확신이 있었다."

선생댁에서 기숙하며 몇 년 동안 조각을 배웠다는 한 제자는 이렇게 전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 작업을 도와드렸고, 주말에는 내 작업을 했다.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을 닮고자 노력했다. 좋은 작품을 하려면 먼저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의 인격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뉴시스】 전뢰진 사랑 대리석 75x38x70cm 1982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전뢰진 구순기념 특별전에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드로잉 100여점이 선보인다. 제자들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드로잉 400여점을 찾아냈다. 전뢰진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예술세계를 증명하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 하이라이트는 드로잉이다. '전뢰진 단행본'을 낸 고종희 미술사학자는 "전뢰진 드로잉은 이중섭 박수근 못지않게 한국인의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며 "동서양 미술사, 회화 조각을 넘나드는 그의 상상력과 예술에 감탄하면서 드로잉을 한 점 한 점 선정할때마다 그 아름다움과 따뜻함, 참신한 발상과 유머에 감탄을 거듭했고, 소름이 돋은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등 대형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드로잉관과 판화관이 따로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전뢰진 드로잉 전기를 계기로 드로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조각가 한진섭은 이번 드로잉 전시가 의미있는 것은 "선생님의 소중한 모형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개 작가들은 돌조각을 하기전 드로잉을 하고 모형을 만듭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모형이 드로잉입니다. 공간 입체에 대한 능력이 탁월하시다. 드로잉에 정면, 평면 그려서 바로 돌조각을 합니다. 항상 주머니에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며 생각나는대로 드로잉합니다. 정면 하나로도 입체를 다 작업하십니다."

-왜 드로잉을 그렸나.

"그냥 하고 싶어서.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는데, 드로잉을 보면 그때 했던 일들이 생각나. 그걸 보고 만들면 조각이 되기도 하지. 생각난다고 다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고, 생각난 것 중에서 다시 작품을 하려고. 그려보고, 안되면 놔두고."


조각가 전뢰진의 원래 꿈은 화가였다. 당시 서양화가 거장이던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물방울 작가 김창열과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도안과에 입학했다 6.25 전쟁발발로 학업이 중단됐다. 1953년 고교 은사인 홍일표 선생의 권유로 조각을 했다. 그후 홍익대학교에 편입, 윤효중에게 조각 수업을 받으며 석조각을 시작했다.

이후 윤효중 교수의 심부름이 인생전환이 됐다. 석공들을 감독하는 일을 대신하다 돌 조각의 세계에 들어섰다. 28세인 대학 3학년때 반도호텔 분수를 제작하면서 정이나 망치 쓰는 법을 석공에게 배웠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아진하워 대통령 방문때 선물용으로 갖고 가면서 '돌 조각가'로 주목받았다.

1956년 홍익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1961년 국전 추천작가로 선정됐다. 1963년부터 홍익대 조각과 교수로 1994년 홍익대에서 정년퇴임,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교수시절 별명이 '쪼쪼쪼 선생'이었다. 3학년 실기실 옆에 있던 선생 작업실에서 항상 나는 '쪼쪼쪼...'하는 망치 소리때문이었다. 제자 중에는 홍익대 조소과 출신이 아닌 기능올림픽 선수 출신들도 있다. 이들은 현재 석공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석장이 된 사람들도 있다. 현재 홍익대 미술대학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구상조각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돌 조각 살아있는 전설'이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올해 구순인 전뢰진 조각가가 여전히 망치를 들고 대리석 조각을 하고 있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절대로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셨어요. 이제 나이가 들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칠순의 제자 조각가 고정수는 "선생님은 국내 조각사의 보석같은 존재라며 잘 써 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은 생활철학이 용수철입니다. 한 때 휘어져도 딱 멈춰요. 오죽하면 교수회의때, 잘나가는 작가가 "당신은 19세기 작가야"이렇게 폄훼해도 "나보고 19세기 작가래~" 그 말만 했을 뿐이지 아무런 반감을 안보였어요. 남을 비방하지 않아요. 우리 선생님은 또 유명해지기를 싫어하세요. 회고전 같은 것 하지 말래요. 왜 작품을 괴롭히냐고. 잘 가있는데..."라고.

새해가 되면 선생댁은 세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제자들로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올해도 정년한지 25년이나 지났지만 구순이 된 노 스승을 찾은 제자들의 변함없는 새해 풍경이 이어졌다고 했다. "진정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 제자는 선생이 수양버들을 닮았다고도 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래서 줏대가 없어 보일때도 있어요. 모든 이에게 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석조각만을 하고 살았던 선생은 허름한 작업실에 다소곳이 앉아 돌을 쪼며 소박한 삶을 살았다. 술도 좋아했지만 작품이 항상 우선이었다. 모든 것을 다 양보했으나 조각 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던 선생에 대해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하다'고 했다.

성자의 대다수는 특별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니라 작은 일을 평생 성실하게 산 사람들이다.

작가와 작품은 하나다. 돌은 전뢰진을, 전뢰진은 돌을 닮았다. 오랜 시간이 빚은 정직한 작업, 흰 색의 돌 조각에서 '쪼쪼쪼'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전시는 29일까지.

h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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