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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0 타임' 김순기 "백남준 때문에 비디오 한 것 아니다"

2018.09.04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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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3일 김순기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전시한 일필휘지로 그려낸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서 개인전...회화·설치·영상 전시
1971년 프랑스 정부 초대로 도불 38년간 미대 교수
존케이지 만난 후 백남준과 인연...동서양 융합 '열린 세계' 추구

"어렵다고? 작품을 눈으로 보고 재미있다고 하면 되고, 재미없으면 그냥 나가면 된다. 의미심장한 것을 담지 않았다. 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다."

김순기(72)작가는 시크함과 시니컬함 사이를 오갔다. 3일 오전 서울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작품 설명을 하던 그는 작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쏘아붙이듯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작품에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담을 의향도 없고, 담아도 별거 아니다. 나는 작품에 의미를 찾지 않는 사람이다."

현 미술시장에 덜 알려진 작가지만 국내 현대미술사에 빼놓을수 없는 작가다. 1970년대 도불, 비디오 아트로 프랑스미술계에 이름을 부각하며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작품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해왔다. 프랑스에서 미학과 기호학을 수학하고 재불작가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이번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는 지난 2016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서울에서 이은 2년만의 개인전으로, 국내 비엔날레 시즌에 맞춘 전시다.

아라리오 측은 "광주 부산등 비엔날레를 찾은 국제미술관계자들이 한국 미술을 찾을때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전시"라며 "이미 40~50년전 비디오와 개념미술을 하며 현재 국제무대에 선보여도 손색없는 작가를 소개하는 의미있는 전시"라고 밝혔다.

고희를 넘긴 작가 김순기는 강팍한 인상이었다. 청바지에 흰 남방을 입은 그는 꽂꽂하고 당당함이 넘쳤다. 백남준과 관련한 질문에 항간에 알려진 '백남준 때문에 비디오를 한 작가'라는 것은 잘못됐다며 정정을 요구했다. 1971년부터 프랑스 니스와 모나코에서 관객과 실시간 연결되는 비디오와 퍼포먼스 작품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비디오 작업을 하고 싶어 백남준을 만난게 아니다"고 강조하며 "존 케이지를 만난 후, 백남준을 만났다"는 일화를 전했다.

미국 작곡가로 유명한 존 케이지1(912~1992)와의 만남은 우연한 계기로 인연이 됐다. 1977년 프랑스 한 수도원에서 '존케이지와 함께하는 페스티벌'에 갔다가 세미나를 들으면서였다. 당시 존케이지 이름만 들었을뿐 작품을 모를때였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그의 작품 설명은 너무 재미있었고, 또 당시 비트겐슈타인과 장자에 빠져있던 작가에게 존케이지 작품은 동양사상과 연결되는 지점이 보였다. "당신 음악작업은 생활언어를 가지고 언어기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작곡이 열린 작곡인 것 같다"는 동양 여자의 질문을 받은 존케이지도 싱글벙글했다.

김순기는 "이야기가 통하니 너무 신났다. 그때 당시 어제는 연애에 실패해서 속상했는데, 오늘은 산에 와서 할아버지(존케이지)가 이해를 하니까 신나고 행복했다"면서 "산책길을 따라온 존케이지 덕분에 무작정 오게된 페스티벌을 즐겼다"고 했다.

이후 "뉴욕으로 간 존 케이지가 백남준을 만나 한국여자인데 꼭 만나야할 여자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1978년 파리 현대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한 백남준과 만나게 됐다"면서 "백남준 때문에 비디오를 한게 아니다"고 거듭 지적했다. 김순기 작가는 1982년 백남준 아뜰리에서 인터뷰한 영상을 선보였고, 1983년 파리에서 백남준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서울=뉴시스】 김순기 개인전

이번 전시는 하나로 규정할수 없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볼수 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은 회화와 설치, 비디오까지 다양하다. 커다란 지도, 악보를 붙인 오르골같은 기타, 세계 지도 테두리에 깡통을 연결한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시간’, ‘가로지름’, 그리고‘일필(一筆)’의 개념이 순환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다양한 작업처럼 그는 열린 세계를 추구한다. 작품들은 “여기도 저기도 이고, 여기도 저기도 아닌" 경계와 사이속을 헤집으며 결국 아무것도 아닌 '제로 타임(0 Time)을 보여준다. '제로 타임'은 김순기 작업의 핵심으로 '시간적 흐름이나 방향성이 뒤섞여 역설적으로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전시장 1층과 지하1층에는 작가가 반구성하며 구성한 세계지도, 시작과 끝을 기록하는 타임 스탬프가 뒤죽박죽으로 엉킨 영상, 길을 가로지르는 '꿩 4마리' 비디오를 볼수 있다.

'꿩 4마리' 영상은 차를 타고 가다가 위험한 도로에서 만난 꿩 가족을 담은 비디오다. 도로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먹이를 찾는 꿩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당시 비디오를 찍을때 "남북 통일 된다는 뉴스가 한창이었고, "이북에 가서 작품을 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단순한 영상이지만, 생존 본능은 이길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자동차가 빵하면 깜짝 놀라 비키고, 주위를 살피면서도 먹거리를 찾아 도로를 왔다갔다 하는 꿩들의 모습은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과도 겹친다. 우연이 만들어낸 시간성의 기록이지만 무한한 열림을 모색하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드러낸다.

2층에 전시된 '일필' 시리즈는 젊은 시절 활쏘기를 했던 작가의 몸과 정신이 하나로 구현된 작품이다.

"활을 쏠때의 신체 감각은 붓을 대고 한번에 그려낼 때의 기운과 같은 것"이라는 작가는 "이 작품을 40여년만에 꺼내온 작품"이라고 했다. 옛날 작품이지만 작가의 내공을 말해주는 듯 하다. 금색으로 칠해진 '일필'은 변치 않는 색감의 강렬함과 짱짱한 에너지를 여전히 힘있게 발산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김순기 개인전이 11월11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작가는 경계와 한계, 편견을 넘어왔다. 한국인이면서 프랑스인 이방인이자, 작가(여자),작가(남자)의 차별속에서 예술가의 품격을 유지했다. 46년생 작가의 이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 시절에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를 의문케 하는 '도깨비' 같은 인생을 살아냈다.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로 이주, 비디오아트 작가이자. 한국인 처음으로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마르세이유 고등미술학교, 프랑스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 교수로 38년간 일했다.

꿈을 이룬 작가다. "7살때부터 세계지도를 펴놓고 프랑스 가서 작가가 되고싶다"고 했다는 그는 '국가 대표 수재'였다. 전쟁중에도 머리 좋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만든 정부 정책에 설립된 대전사범부속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작가는 "자전거 모형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시험을 보고 들어간 학교 시절은 너무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때 피카소 그림과 서양미술을 유화로 베껴 그릴 정도로 특수교육을 받았다"며 "서울 창덕여고 졸업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미대에 들어가기전 매를 맞으면서도 공부했다.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서울대 다닐때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느랴 일부러 통행금지 5분전에 집에 들어가곤 했다. 아버지는 미술 좀 그만두라고 성화였고, 프랑스도 못가게 해 책도 불태우기 일쑤였다.

'수재'는 프랑스에서 날개를 달았다. 1970년대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장관인 시절 프랑스 정부는 세계 각국의 수재를 뽑는 장학제도를 실시했고, 김순기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발탁됐다. 프랑스 정부는 1년후 "교수가 돼라"고 추천했고, 200명 장학생중 또 1등이었던 그는 그렇게 미대 교수가 됐다.

【서울=뉴시스】 김순기 개인전이 11월11일까지 아라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작가로서 작업도 포기하지 않았다. 70대~80년대 파리로 온 한국 남성작가들이 '여자는 (작업을)계속할 수 없다. 이런 작업 하면 안된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 서운함은 통쾌하게 전시로 복수했다. 20년이 지난후 일본 쿠니다치 대학 뮤지엄에 전시에 초대되어 일본에 방문했을때 일본에 사는 그 작가(이우환)에게 전화했다. "선생님 저 일본입니다. 쿠니다치에서 전시하는데 오세요."라고 하자 "한국사람이 쿠니다치에서 전시하는 건 처음인데, 장하다"라며 반겼다고 한다.

미술 작가지만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책도 여러권 썼다. '산은바다요, 바다는산이요: 장자와비트겐슈타인(Montagne, C’est la Mer: Tchouang-Tseu et Wittgenstein)', '게으른 구름(Les Nuages Paresseux)', '예술 혹은 침묵의 청취: 김순기와자크데리다, 장-뤽낭시, 존케이지와의대화(Art or Listen to the Silence: Kim Soun-Gui Conversation with Jacques Derrida, Jean-Luc Nancy and John Cage)', 시화집 '보이니? (Entends-tu?)를 출간했다.

72세. “내 작업세계와 결혼했다” 며 자유롭고 열린 세계를 추구하는 작가에겐 흐르는 세월도 무상하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큰 꿈이 있었죠. 세계 돌아다니며 구름 타고 달나라도 가고 싶었고, 지금도 더 많은 곳을 가고 작업하고 싶어요." 전시는 11월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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