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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너무 더우면, 누구나 쓰셔도 돼요"…이 한 줄 메시지의 ‘울림’

2018.08.13

[뉴스1] 송화연,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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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지하철 경복궁역 앞 그늘막에 설치된 이효열 씨의 작품 '우리의 그늘' © News1

"재난 수준의 폭염에 일사병이나 열사병으로 노약자분들이 많이 돌아가신다 하더라고요. 양산이 있으면 취약 계층분들이 안전하고 시원할 수 있겠다 싶어서 준비했습니다"

입추(立秋)가 지났지만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서울 시내 곳곳 그늘막 쉼터에 무료 양산이 설치됐다. '너무 더우면, 누구나 쓰셔도 돼요'라고 적힌 분홍색 양산 꽂이엔 알록달록한 양산이 꽂혀있다.


설치미술가 이효열(32) 씨의 '우리의 그늘' 프로젝트다. 이씨를 9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그의 갤러리 카페에서 만났다.

서울 시내 100곳에 양산 설치를 목표로 하는 그는 사비를 들여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양산과 거치대의 구매·설치·관리를 모두 홀로 진행한다. 매일 새벽마다 양산이 빈 곳을 확인하고 채워 넣는다. 경기 시흥시와는 협업을 맺어 취약계층 거주지에 양산을 제공하고 있다.

양산은 사용하고 난 뒤 그의 작품이 설치된 그늘막 쉼터에 반납하면 되고, 여건이 마땅치 않으면 반납하지 않아도 된다. 양산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는 우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반납을 강요하지 않지만 돌아오는 양산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작품을 설치한 그 역시 양산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저는 질문하는 걸 좋아해요. 이런 것도 하나의 질문이었거든요. '제가 양산을 여기 둘 건데, 당신은 쓰시고 다시 갖다 두실 건가요?'라고 묻는 거죠. 돌아온 양산을 보면 저는 대답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실험 같아요. 저만의 도구로 계속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는 이외에도 2013년부터 '뜨거울 때 꽃이 핀다', '네모난 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옆에 이효열 씨의 작품 '뜨거울 때 꽃이 핀다'가 설치돼있다 © News1

'뜨거울 때 꽃이 핀다' 프로젝트는 연탄재에 물통을 넣어 꽃을 심어두는 프로젝트다. 꽃 옆에는 '뜨거울 때 꽃이 핀다'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열정을 다하고 난 뒤 우리 인생에 꽃이 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3000회 이상 인증되며 젊은 층의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재 이 작품은 전국에 딱 두 곳에 설치돼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앞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옆이다. 소녀상 옆에 설치된 이유를 묻자 "뜨거움을 더해야 하는 곳이 소녀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주 수요집회 전에 새 꽃으로 교체하고 강한 비가 오면 소녀상 주변이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작품을 해체한다.

'네모의 봄'은 겨울날 버스 정류장의 차가운 의자에 직접 만든 노란 방석을 묶어두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추위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본인의 경험에서 착안했다. 방석이 있으면 따뜻할 것 같아 동대문 시장에서 천을 떼다 바로 방석을 만들었다. 작년에만 100개 이상의 방석을 만들어 버스 정류장에 설치했다.

이효열 씨의 작품 '네모난 봄 © News1

'한 사람이라도 따뜻했으면 좋겠다'던 그의 생각이 언론에 알려지자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 대전 등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방석을 버스 정류장 대기석 의자 위에 올려두는 익명의 사람들이 생겨났다. 서울 서초구는 그의 아이디어를 본떠 주민들이 직접 방석을 짜 버스 정류장에 설치하는 '엄마 방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그가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보면 미술을 배우지 않고 좋아하던 뱅크시(Banksy)라는 거리 예술가가 불시에 특정 장소에 나타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사라져요.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의 행동에 감동과 영향을 받죠. 이런 뜻밖의 반응이 재밌어보여서 저도 시도해보고 싶었어요"

서울 시립미술관이 그의 첫 데뷔 장소였다. 야외 전시장에 몰래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작품을 설치했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이 미술관의 작품이라 생각했고 SNS에 인증했다. 따지고 보면 불법이었지만 미술관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잘 다니던 공익 광고회사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설치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때도 이때부터였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가을에 진행될 예정이다. 초과근무로 인한 과로사 공방에 휩싸이고 있는 집배원 돌연사 사건과 관련해서다.

"집배원분들은 과도한 택배 물량에 어쩔 수 없이 초과 근무를 하세요. 실제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시는 분들도 언론에 소개되고 있고 관련해 집배원분들의 농성도 계속되고 있어요. 가을엔 추석이 있다 보니 택배량이 더 많아지잖아요. 이 악순환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빨간 우체통에 추모를 뜻하는 국화꽃 한 송이를 꽂고 메시지를 적을 생각이에요"

'No Saturday' 프로젝트로 이름 붙인 이 캠페인은 집배원들의 토요 근무를 반대하고 과도한 근무로 돌연사한 집배원들을 위로하는 프로젝트다. 집배원들의 업무 환경 개선 요구를 하나의 예술과 캠페인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설치미술가 이효열 씨 © News1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서 창작의 스트레스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묻자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며 환하게 웃었다.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는 것이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이유다. 그는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캠페인이 되길 꿈꾼다"라고도 했다.

'우리의 그늘' 프로젝트 같은 경우, 시민 누구나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양산을 이 씨에게 기부하거나, 이 씨가 설치한 그늘막 쉼터 양산 꽂이에 꽂아두면 된다. 누구나 사소한 행동 하나로 세상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이효열 씨의 '우리의 그늘' 프로젝트는 9월 초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 설치미술가 이효열씨의 영상 인터뷰 보러가기


hwa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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