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있는 그대로의 北···임종진 사진전 ‘사는거이 다 똑같디요’

2018.07.25

[뉴시스] 조수정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갓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

“줄넘기놀이 기억하시나요? 여자아이들이 줄넘기놀이를 하고 있는데 개구쟁이 남자 아이가 줄을 탁 끊고 도망가는 거예요. 우리 놀던 모습과 다를 게 없죠.”

갓 결혼식을 올린 신부가 상기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줄넘기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아버지, 장을 보는 어머니, 밀애를 나누는 연인, 가방을 비스듬히 맨 여자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간다.

북한의 일상이 담긴,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느낄 만한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을 촬영한 임종진(50)씨는 특별할 것 없는 모습들에 취해 “카메라가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반백년 넘게 한쪽 면만 보고 따져 묻던 시선을 거두고 보니 사는 것이 다 똑같은, 우리네 정경이었다고 한다.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그에게 북녘의 안내원들이 묻는다.

“림 선생, 사는거이 뭐 다 똑같디요. 무엇이 좋아서 그리 찍습네까?”

줄넘기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그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사진기자 자격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북녘 땅을 밟았다. 가장 많이 북한을 방문한 사진기자로 꼽힌다. 북한 기관원들은 그를 김정일이 유일하게 기억한 남녘 사진가라고 했다.

31일부터 서울 종로구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북녘의 일상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촬영한 사진 50~60점을 전시한다.

첫 방북은 월간 ‘말’ 기자 시절인 1998년 11월28일이다. 출국을 사흘 앞둔 월급날, 110만원쯤 되는 월급 중 100만원을 찾아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스웨터, 속옷 등 의류, 벨트, 지갑에다 어린이들을 위한 크레파스, 색연필, 스케치북, 볼펜, 연필, 샤프 등 학용품 수백개씩을 사서 커다란 두 개의 보따리에 한가득 담아 베이징 공항으로 향했다. 대학에서 사회운동도 좀 하고 진보 매체에서 일하면서 나름 깨어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그도 방북 전에는 북한을 가난한 나라, 못사는 나라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봤다.

평양 순안공항으로 가기 위해 베이징에서 하룻밤을 묵는데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내가 뭘 볼 수 있을까’, ‘선배들 말대로 사진을 마음대로 찍지 못하거나 검열을 받는 건 아닐까’, ‘가난 말고 찍을 게 있을까’···. 많은 고민으로 한숨도 못 잔채 평양으로 향했다.

잔뜩 긴장하고 도착한 북녘 땅에 첫 발을 딛는데 밝은 표정의 안내원들이 반긴다. 말이 통한다. 우리말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깊이 숨을 들이키는데 이상하리만치 공기도 기운도 똑같았다. 따스한 가을 햇살, 높고 푸른 하늘마저도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내내 품고 있던 두려움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걷히는 것을 느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뒤엉켰다. 모든 것이 낯설어야 할 자리에서 마치 잘 아는 동네를 다시 방문한 듯 묘하게 출렁거리는 기시감이 반가웠다.

말로만 듣던 북한의 언론통제, 감시하고 강제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우리가 서로 공감할 만한 무엇을 찍고 싶습니다. 남쪽은 ‘꽃제비’라 불리는 사진들이나, 체제 비판적인 사진들이 많아서 북쪽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있습니다. 당신들 살아가는 보통의 모습들을 내 느낌대로 찍으려 합니다”며 통제하지 말아달라고 청했다.

애인사이

다음날 아침, 북측 안내원이 “림 선생 찍고 싶은대로 다 하시라요. 우리가 한번 믿어 보갔습네다”라고 했다. 의외였다.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인해 평화로운 분위기였다고 해도 북은 사진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이질적이거나 낙후된 북한의 좋지 않은 이미지들 만이 보도되던 시절이다. 유례없이 자유로운 촬영 허가였다. 북한의 구석구석을 별다른 제지 없이 다니며, 정치나 이념에 의해 삭제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그들의 민낯을 만나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당시 그와 동행한 안내원 중에는 현재 고위직에 오른 김성혜(53) 북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도 있다. 여섯 차례 방북 길에 김성혜 실장과 함께하며 김 실장을 ‘누나’라고 불렀다.

당시 김일성종합대생 장류진

안내원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인민군 장교 둘이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아, 이건 표지 사진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회에 무언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표지에 내밀었더니 편집자마저도 ‘이건 위험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강하게 주장했지만 결국 표지는 소풍 나온 북한 주민들의 사진이 차지하고 이 장교의 사진은 뒷면 화보로만 실렸다.

1998년 12월호 월간 말에 실린 이 사진은 1999년 2차 방북에서 “왜 우리 늠름한 장교 동무를 동네 아저씨처럼 찍었느냐”며 투정과 웃음이 섞인 항의를 낳았다.

“그날 강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심각하게 이야기 나눴어요. 우리 장교를 강건하고 힘 있게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하더라고요. 저는 남쪽의 고정관념을 풀어주려는 거라고 답했고 접점을 찾기 위해 밤새 토론이 이어졌어요. 필름을 던지면서 ‘나 다 그만두겠다’고도 해보고 형님은 ‘너 아니면 누가 오냐’ 며 주고받던 우리끼리의 회담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요.”

아빠와 손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어린이

안내원이 아닌, 북한의 보통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를 처음 보면 해외 동포로 알거든요. 옷차림이 다르니까요. 동포를 만났다고 반가워하는데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더 좋아하는 거예요. 통일해야 한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더라고요. 그들과 같이 시 읊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술도 한잔 하고요.”

북한에서의 경험들은 그에게 사진기자로서, 사진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 역할과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타인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집요하게 자책했다. 월간 말, 한겨레 신문 등을 거치며 이라크 내전, 캄보디아 에이즈 환자 등을 취재했다. 사람의 삶에 깊이 천착할 수 있는 사진을 해보자는 생각이 커졌고 매년 캄보디아를 찾았다.

결국 2006년 한겨레 신문을 나와 캄보디아에서 2년 가까이 작가가 아닌 ‘사연 전달자’가 되기로 한다. NGO 활동가로 일했던 캄보디아 등 수많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하는 사진 이미지 활용에 대한 여러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1급 사진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국가인권위원회 등 사진치유 전문위원으로서 5.18 광주민주화항쟁 고문피해자, 1970~80년대 조작간첩 고문피해자, 발달장애인, 가정폭력피해 청소년, 일반 시민들을 위한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식회사 공감아이 대표를 맡고 있다.

“지금은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라 얼마나 같은가를 이야기해야 할 시기라고 봐요. 어떤 식으로든 많이 만나고 교류해야 합니다.”

사진가 임종진

그는 정다운 벗처럼 우정을 쌓은 북측 안내원들과 보통강 기슭에서 다시 만나 맥주 한 잔 곁들인 흉금없는 대화를 나눌 날을 기대한다. 한때 우리 대학생들의 마음을 들끓게 한 당시 김일성종합대 대학생 장류진씨를 만나면 이제라도 그녀를 찍은 사진 한 장을 꼭 건네주고도 싶다. 대동강변 공원에서 만난 수줍음 많던 신랑신부도 다시 만나 다 키운 자녀들 얘기로 꽃을 피워보는 상상도 해본다. 북녘에서 사진전을 열어 남과 북이 함께 만들어가는 평화를 노래하고 싶은 꿈도 펼쳐본다. 상상이 현실이 돼가는 지금, 그는 소망 하나를 품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는 8월26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개막 행사는 8월 1일 오후 6시다. 공감아이가 주최하고 류가헌이 주관하며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이 후원한다.

전시와 함께 사진집 ‘북녘의 일상, 다 똑같디요’도 출간한다. 갤러리 류가헌 현장 구매, 인터넷(https://goo.gl/forms/yX5uIgu7bWftTNfv2)으로도 주문 가능하다. 4만원, 182쪽. 30일까지 저자 사인이 포함된 오리지널 프린트 1장을 포함, 5만원에 구입할 수도 있다.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