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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이명호 작가 "해외 디자이너와 '표절소송' 배경은…"

2017.08.31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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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Tree... #6 (사비나미술관 제공) © News1

英유명 패션디자이너로부터 합의 이끌어내…30일부터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국내 유명 디자이너나 기업으로부터 '협업'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다 거절했어요. 제 작품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아트상품'처럼 소비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소장 가치를 위해서라도요. 그런데 그 해외 디자이너가 그걸 그냥 가져다 쓴 겁니다."

최근 영국 유명 패션 디자이너를 상대로 한 표절 소송을 '사실상 승소'로 매듭지은 사진작가 이명호(42)가 30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간 사건의 배경과 경과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 작가는 영국 패션 디자이너 마리 카트란주(Mary Katrantzou)를 상대로 작품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가 법정 싸움 직전인 지난 1월 보상액 일부와 공식 사과문을 받고 전격 합의했다. 이는 국내 작가가 해외 유명 작가를 상대로 저작권을 당당히 인정받은 드문 케이스다.

나무 뒤에 하얀색 캔버스를 세워 사진을 찍는 작업으로 유명한 이명호 작가가 30일부터 사비나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2년 여에 걸친 표절 시비를 마무리짓고 여는 미술관 전시라 의미가 남다르다.

이명호, Tree... #5 (사비나미술관 제공) © News1

이 작가는 2015년 자신의 작품을 무단 도용했다며 마리 카트란주를 상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했다.

이 작가는 2년 전 자신의 대표작 이미지가 고스란히 복제된 카트란주의 티셔츠가 국내 유명 편집숍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개당 500유로(약 67만원)가 넘는 고가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됐고, 이에 카트란주를 상대로 '저작권법과 랜험법(Lanham Act·미 연방 상표법)에 근거한 저작권 침해와 부정 경쟁에 대한 소'를 제기했다. 당시 이씨가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200만달러 규모였으나, 합의금을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작가는 전시 개막에 앞서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간 있었던 표절 공방에 대해 운을 뗐다.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뿐이지 표절 분쟁은 늘 있었어요. 저는 제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 미술계에 하나의 선례를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상대가 꽤 유명한 디자이너여서 '이번만큼은 문제를 짚고 넘어가자' 싶었죠."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카트란주는 처음에는 표절에 대해 '전면 부정'했다. 이에 이 작가 측에서 어떤 부분이 표절인지 작품과 상품 이미지를 대조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카트란주가 가져다 쓴 이미지가 이 작가의 작품과 동일하게 캔버스 7폭을 이어 붙인 점, 똑같은 나무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 몇 개를 고의로 지운 점들이 역으로 그가 이 작가의 작품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도용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결국 카트란주 측에서 표절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선례가 없었던 일"이라고 자평했다. 법정 소송으로 가기 전 합의로 사건을 종결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처음 시작할 땐 정식 재판을 통해 '판례'를 받고 싶었으나, 같은 창작자 입장에서 과하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명호, Mirage #5_Patagonia (사비나미술관 제공) © News1

표절 공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의 대표작인 나무 연작과 함께 제주의 오름, 브라질 사막 등에서 작업한 파노라마 형태의 신작들을 선보였다. 카트란주가 표절했던 작품 '나무...#3'(2012)도 내걸었다.

이와 더불어 전시장 1층과 지하에는 작가의 작업 철학을 보여주는 공간 설치작품을 구현했다. 카메라를 상징하는 가림막 구조물에는 안쪽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렌즈를 설치했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관람객은 관찰자(사진을 찍는 카메라)이면서 동시에 피사체(사진이 찍히는 대상)가 되는 구조다.

이 같은 공간설치에 대해 작가는 "단순히 사진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대상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했다.

"사진은 필름을 특정한 시·공간의 한 지점에 잠깐 담궜다 꺼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들춰 환기시키는 거죠. 모든 장르의 예술이 그런 것 같아요. 시·공간의 한 지점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예술의 '원시적 기능'이 뭔가를 보여주는 겁니다."

사진이라는 최종 결과물은 매우 정적이지만, 작업 과정은 무척이나 역동적이다. 실제 존재하는 나무 뒤에 대형 캔버스를 세운 뒤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이라 한 작품에 동원되는 스태프만도 50~60명에 달한다. 캔버스를 들어 올릴 크레인부터 '밥차' 대여까지, 마치 영화 제작을 하는 듯한 '공정' 과정을 거친다.

이 같은 작업의 이유는 하나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환기하려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를 뛰어넘는 예술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명호, Tree... #8 (사비나미술관 제공) © News1

'나무' 시리즈로 작품성과 함께 '상업성'을 일찌감치 인정 받았지만 작가로서 고민은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이전과는 또 다른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장 크다.

"마치 '양날의 검' 같아요. 다들 제 작품의 대표적인 '표상'만을 기대하니까요. 우리 주변에 있는 아주 흔하고 사소한 대상으로 나무를 선택했는데, 그게 대중에 각인되고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시장에서는 자꾸 그 작품만 찾네요. 저는 계속 다른 걸 하고 싶은데 말이죠." 전시는 9월29일까지 이어진다.

1975년생인 이명호 작가는 중앙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으며, 현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2006년 사진비평상운영위원회 '사진비평상', 2009년 성곡미술관 '내일의작가상', 2013년 독일 '레드닷어워드'·'IF어워드'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사진미술관, 미국 장폴게티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이명호 작가 (사비나미술관 제공) © News1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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