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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1960~70년대 타자화한 욕망, 그 이름은 김추자

2017.07.25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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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아시아 디바'전에 전시된 가수 김추자의 사진들.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기획전 '아시아 디바'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본 냉전과 독재, 젠더와 섹슈얼리티

한국정부의 베트남 파병이 한창이던 1969년 19살 김추자가 데뷔한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학년이었던 그는 대학교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했고, 이후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신중현을 만나 그 해 1집 '늦기 전에'를 발표한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등 수많은 히트곡과 함께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김추자는 1970년대 최고의 '디바'로 시대를 풍미했다. 당당한 눈빛으로 엉덩이춤을 추며 관능미과 퇴폐미를 발산했던 그는 한국 근현대 가요사의 독보적인 '디바'였고, 정치경제 격변기 남성중심 욕망사회에서 철저하게 '타자화'한 존재였다.

임응식 '핫팬츠'(197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이 25일 개막한 기획전 '아시아 디바:진심을 그대에게'는 1960~70년대 대중문화 아이콘인 김추자를 상징적인 키워드로, 냉전과 개발독재의 후기 식민사회에서 소외되고 타자화한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전시다.

1960~70년대는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빠르게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기였고,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 장기 집권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런가 하면 해외에서는 전대미문의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던 미국과 함께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린 구 소련이 눈부신 과학기술을 발전을 토대로 핵개발을 가속화하며 맞선 시기였다.

미·소 냉전 이데올로기가 베트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면전으로 비화했고, 그 와중에 고통과 회의를 느꼈던 청년들 사이에서는 '히피'와 '저항'의 문화가 싹을 틔웠다.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은 "독재로 대변되는 남성중심 정치사회 환경 속에서 김추자라는 대중문화 아이콘을 통해 타자화한 여성들의 존재와 삶을 부각시키는 한 방법으로 '아시아 디바'를 내세웠다"고 이번 전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천경자_헬기수송작전_1972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 News1

전시에는 김소영, 노재운, 딘 큐레, 박찬경, 아라마이아니, 요시코 시마다,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 등과 함께, 김구림, 박서보, 성능경 등 1960~70년대 기하추상 및 실험적인 작품들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종군화가로 활약했던 당시 천경자의 드로잉들도 나왔다. 여기에 김추자의 소장품과 활동 당시 녹음했던 릴테이프 등이 소개됐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김추자의 노래가 들려온다. 김추자가 입었던 무대의상과 흑백 이미지들도 보인다. 시계바늘이 1960년말로 되돌려진 전시장 초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핫팬츠를 입고 명동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흑백 사진에 담은 임응식(1912-2001)의 사진 '핫팬츠'(1971)다. 당시 패션이라는 대중문화의 표상이자 여성이라는 특정 대상을 성적 욕망과 억압의 대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1940년대 미국 성병 경고 포스터.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전쟁과 성노예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1940년대 미국 성병 경고 포스터들과 함께 1973년 월드 디즈니사가 성병 예방을 위해 제작한 교육용 영상이 전시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정부가 성병 감염의 파괴적 영향을 군인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영상도 보여준다. 도입부 자막에는 '성병으로 목숨을 잃은 장병의 수가 세계대전에 참전한 모든 국가들의 전사자 수를 능가한다'고 경고한다.

덴마크 출신 설치미술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제인 진 카이젠의 '몽키 하우스-기묘한 만남들'(11분, 2017)은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된 작품이다. 1960~70년대 동두천 미군부대 근처에 있었던 동명의 집장촌을 배경으로, 거리 여성들의 인권과 삶의 흔적들, 남한과 미국 정부의 협상을 통해 이중고를 겪었던 여성들의 삶을 반추한다.

제인 진 카이젠 '몽키하우스-기묘한 만남들' 싱글채널영상, 11분.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노재운 작가의 '보편영화'(6분50초, 2017) 역시 전시에서 새로 선보이는 작품이다. 전후 한국과 북한,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하위문화 및 선전영화 속에 비친 여성들의 이미지를 재구성해 보여준다. 귀신이나 유령의 모습으로 파편화한 여성의 신체를 통해 여성을 '비인간'으로 대상화하는 시선을 포착한다.

2008년부터 '여성국극'을 연구하며 근대성과 여성성, 타자성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정은영 작가의 영상 및 아카이브 작품도 볼 수 있다. 1940~50년대 여성국극 배우들에 대한 사료 이미지와 영상을 보여주는데, 이른바 '남장배우'로 무대에 서면서 스스로 남성화할 정도로 '젠더 교란'을 경험했던 여배우들의 삶과 예술을 짧게나마 만나볼 수 있다.

정은영 '틀린 색인:여성국극 아카이브' 2017, 가변설치.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박서보, 이승조, 하종현, 한묵, 김구림 등 원로 작가들의 1960~70년대 작품도 별도 전시장에 마련됐다. 냉전시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당시 작가들에게 어떠한 'SF적 상상력'을 자극했는지 살펴보도록 구성된 전시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팝적인 매끈함과 가벼움, 사이키델릭한 대중문화와 결합되며 당대 작가들의 작업은 환각적인 색채, 공간의 왜곡, 중력을 벗어난 형태를 주로 보여준다. 단색화로만 알려진 박서보 화백의 1969년작 회화에서 그래픽적인 요소를 볼 수 있는 것은 낯설고도 흥미롭다.

박서보 '유전질 No. 6-69', 1969,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특히 흑백과 컬러가 교차편집된 실험적인 영상작품 '24분의 1초의 의미'(1969)가 '미묘한 시기'에 전시에 나와 눈길을 끈다. 김구림 작가와 최원영·정찬승·김구림·정강자·반대규 씨가 협업해 1969년 7월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과 관련, 최근 김구림 작가는 주영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그룹전 리플렛에 작품에 대한 작가 소개가 잘못됐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지난 23일 새벽 이 작품에 참여했던 국내 1세대 여성 행위예술가이자 서양화가인 정강자씨의 별세 소식이 전해져 미술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전시 주제가 시대적, 지역적으로 너무 포괄적이다보니,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섬처럼 제각각으로 보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영상작품들끼리 소리의 간섭도 있다. 미술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주제에 따라 작품들을 일정하게 구획짓지 않은 건 의도된 기획이다.

신은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전시에는 많은 키워드들이 숨어있 다"며 "관람객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짜맞춰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0월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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