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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인터뷰]‘속초 실향민을 담다’ 신미정 미술가

2017.02.24

[뉴스1] 고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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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정 작가/뉴스1 © News1 고재교 기자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강원 속초시 청호동에 있는 아바이마을.

지난해 12월17일 이 마을에 컨테이너로 만든 ‘아트 플랫폼 갯배’ 미술관이 열렸다.

갯배 미술관 작품 속에 나오는 북한군 출신의 권문국씨(84)는 청년 때 일어난 6·25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 1세대다.

신미정(34·사진)작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을 작품 속에 담아 표현하는 영상·설치미술가로 지난 6개월간 속초에서 지내면서 실향민의 삶을 영상에 담아 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경로’는 권문국씨가 22살 청년일 때 기록한 일기장으로, 전쟁 당시 참혹했던 현장 상황과 전우들의 죽음,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신 작가는 그의 일기장을 토대로 저자인 권씨의 목소리를 담아 12분 분량의 영상 작품을 만들었다.

뉴스1은 지난 23일 ‘자신의 경로’ 작품으로 5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신미정미술가를 만났다.

권문국씨(84)가 군 복무 당시 쓴 일기. (신미정작가 제공)/뉴스1 © News1 고재교 기자

다음은 일문일답.

-속초에서 작품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 추구해온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바로 이중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작품 속에 담는 것.

속초는 전쟁 당시 소련군에 의해 북한 땅이었다가 다시 남한 땅으로 바뀐 곳이다. 그래서 ‘되찾은 땅’이라는 뜻을 가진 ‘수복로’도 있다.

속초가 남과 북, 2가지 정체성을 같이 안고 있는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 이곳은 실향민들의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전 작품에도 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식민지 시절 익산에서 태어났던 한 일본 할머니 이야기를 하자면 익산에서 태어난 부유했던 22살 일본 소녀가 45년도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일본으로 쫓겨 간다. 고향(익산)을 잃은 그에겐 일본은 이방이었고 새로운 문화와 정체성을 안고가야 하는 곳이었다.

이 작품을 전시했을 때 할머니를 피해자로 생각하지 않고 식민지 시대 착취자를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의견이 제기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외부요인을 제외하고 고향을 잃은 한 소녀의 이야기로 바라보는 게 작품의 취지고 메시지였다.

사람을 사람으로서 바라볼 것인지. 역사·국가적 차원에서 일본인으로 바라볼 것인지.

권문국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치 않게 전쟁이 일어나 가족들과 헤어졌다. 고향은 북에 있지만 여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자신의 삶과 운명이 결정되는 사람들,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

'자신의 경로' 영상 일부장면. '자신의 경로'는 12분19초 분량의 영상작품으로 권문국씨의 목소리를 담아 그의 일기장 내용을 토대로 만들었다. (신미정작가 제공)/뉴스1 © News1 고재교 기자

-속초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청호동 이장님 댁에서 6개월 살다보니 동네사람들을 다 알게 됐다.

제일 재밌었던 것은 바로 앞집에 실향민 2세대 오빠가 살았다. 모두 어르신들이었는데 젊은 총각이라 이내 친구가 됐다. 그를 통해 마을 곳곳을 누비며 각 장소에 담긴 추억과 역사를 들었다. 이후 아바이마을은 ‘그곳’이 아닌 ‘이곳’이 됐고, 살아있는 역사로 다가왔다.

옛날 청호동 사람들이 빨래했던 온정리 약수터에서 물도 떠다 먹었다. 이들 삶에 스며들어보니 살아있는 역사에 내가 들어왔구나 느꼈다.

영상작품 앞부분에 전쟁당시 권 할아버지가 인민군에서 탈영해 15일간 태백산맥을 헤치며 도망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망 나올 당시 아군도, 적군도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이 상황이 가장 무서웠다고 한다. 누굴 만나든 죽는 상황이었다. 풀잎 스치는 소리만 들어도, 다람쥐 지나가는 소리만 들어도 사람인줄 알고 몸을 숨겼다가 코가 깨지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질 때 오는 두려움과 공포가 지금 실향민들이 겪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로' 영상작품 제작 과정. (신미정작가 제공)/뉴스1 © News1 고재교 기자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첫 개인전으로 서울 문래동 폐공장에서 전시회를 열었었다. 그 공장에는 버려진 사진과 편지가 많이 있었다. 편지는 필리핀어로 가족이 너무 보고 싶은데 갈 수 없다는 내용과 오랜 한국생활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려움을 적은 편지가 있었다.

이후 이런 분들을 위한 작업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더 이상 차별과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일수록 이사회에 속하기 힘들다. 이런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고 흔적으로 남기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다.

이때 전시는 설치미술로 자료를 늘어놓는 형식이었는데 사람들이 다 읽어보지 않아 생각한 것이 영상이었다. 이후 자료를 펼쳐서 보여주는 형식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만 모아 영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루하지 않게. 짧게.

장르는 그림과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 시도하면서 결정한 것이 영상과 설치미술이다. 영상뿐 아니라 영상을 보여주는 공간도 설치미술을 통해 작품화 하고 싶다.

비디오아트와 다큐의 모호한 경계, 문학과 예술의 경계에 있는 현대미술을 연구 중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로 작품을 표현하면서 관찰자, 기록자로서 자리매김 하고 싶다.

'자신의 경로' 영상작품 제작하는 권문국씨(오른쪽)와 신미정작가. (신미정작가 제공)/뉴스1 © News1 고재교 기자

-앞으로의 계획과 바라는 점.

▶여러 지역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그 지역 속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 기록하고 싶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이라든지 조선족 사람들이라든지.

얼마 전에 경남 산청군 한센인 마을에 다녀왔다. 그들은 왜 고립돼야 하는가. 우리보다 더 많은 소통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국가나 인종, 상황, 편견을 벗어나 한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싶다.

소외된 집단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이 사람들 모습을 영상에 담아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알리고 싶다.

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삶을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게.


high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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