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컨텐츠바로가기
주메뉴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외부링크용로고

People72년 전 오늘… '절규' 탄생시킨 고독과 슬픔의 거장 눈감다

2016.01.23

[머니투데이] 박성대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 Pinterest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팔린 뭉크의 절규(1893)와 에드바르 뭉크.

[역사 속 오늘]노르웨이 대표 미술가 '에드바르 뭉크' 타계.




2012년 5월2일(현지시간) 뉴욕 소더비 경매장.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역대 최고가가 경신됐다. 낙찰가는 1억1990만달러(약 1439억원), 작품명은 '절규'(Skrik·The Scream).

현대식 미술관 하나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거장 '에드바르 뭉크'다. 생과 죽음의 문제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있는 고독, 불안 등을 다뤘던 그는 1944년 1월23일 "내 몸이 썩으면 그 위에 꽃이 피고 나는 꽃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뭉크가 현재까지도 언급되는 이유는 비극으로 점철된 인생 속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모든 열정과 재능을 예술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리고 그의 작품을 걸작으로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뭉크는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 노르웨이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오슬로의 옛 이름)에서 가족들과 함께 다락방을 전전한다. 뭉크의 어머니와 누나 소피아는 각각 1868년과 1877년 결핵으로 사망하고 나머지 동생들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산다. 뭉크 자신도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다.

몸이 아파 학교를 자주 쉬던 그는 혼자 시간을 보내며 그림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슬픔, 분노, 절망과 같은 감성을 캔버스에 담았다. 굵고도 흐릿한 경계선과 직선보단 곡선으로 공간을 채우며 특유의 화풍을 만들어간다.

이후 베를린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뭉크는 1893년 절규 첫 작품을 완성한다. 이는 뭉크가 직접 겪었던 공황발작 증세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림에 나온 붉은 하늘, 일그러진 수평선 등은 뭉크에겐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절규는 현재까지 4점이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같은 장면이지만 두 점은 유화, 나머지는 각각 파스텔과 크레용으로 그렸다. 크레용과 유화는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이, 또 다른 유화는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2012년 경매된 파스텔 작품(1895)만이 개인 소유다.

절규는 20세기 팝아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쳐 앤디 워홀도 절규를 응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사망 뒤 그의 유언에 따라 작품 2만여점이 모두 기증됐고, 탄생 100주년이자 사후 19년인 1963년 오슬로시에 뭉크 미술관이 개관한다. 노르웨이 정부도 국민화가인 그를 기리기 위해 1000크로네 지폐에 그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email protected]

최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