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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성찬 차렸는데 먹을 사람이"…아트페어의 '딜레마'

2017.06.05

[뉴스1] 김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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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갤러리가 올해 '아트부산'에 출품한 강형구 작가의 문재인 대통령 초상화 작품 '디 아이즈 오브 타이거'(The Eyes of Tiger). 2017.6.2/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아트부산 2017' 현장에서 본 국내 아트페어 현주소

"작품 수준은 예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볼 것도 많고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없네요…."

지난 2일 오후 '아트부산 2017'이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 전시장은 놀랄 정도로 한산했다. 전날 VIP 오픈에 이어 일반 공개를 시작한 페어 현장은 평일임을 고려하더라도 한 눈에 들어오는 관람객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시 부스를 차린 갤러리들은 하나같이 "사람이 너무 없다"며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16개국 170여개 갤러리들이 들고나온 작품의 평균 수준은 9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보다도 더 좋다는 평이 나왔다. 물론 국제적 수준을 갖춘 유력 갤러리와 지역 군소 갤러리들의 수준 차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차려진 '성찬'이라는 평가다.

주말인 3일 오후부터는 분위기가 다소 반전되는 듯 보였다. 전날보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젊은 관람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관람객 수 증가가 작품 판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작품이 페어 현장에 걸리자마자 '빨간 딱지'(판매되었음을 알리는 동그란 표식)가 붙을 정도로 인기였던 이른바 '포스트 단색화' 작품들 역시 개막 셋째 날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페어 주최 측과 참여 화랑들은 미술시장 불황과 홍보 부족을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국내 미술시장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트부산 국제갤러리 부스 전경. 2017.6.2/뉴스1© News1 김아미 기자

◇'구색' 갖췄지만 출품작 수준 들쑥날쑥…볼거리 많지만 신선함 부족

아트부산이 열리는 벡스코 제1전시장의 맨 가운데 공간에는 국제갤러리, 학고재갤러리, 이화익갤러리, 리안갤러리, 박영덕화랑, 조현화랑 등 서울과 부산,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 유력 갤러리들을 중심으로 상하이·홍콩·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펄램갤러리, 파리·뉴욕·홍콩·서울에 기반을 둔 페로탱갤러리 등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자리를 잡았다.

국제시장에서 활동하는 갤러리들이니만큼, 작품 수준은 해외 페어 때 못지않았다. 국제갤러리는 이우환, 김용익 화백의 회화 작품과 함께 아니쉬 카푸어, 줄리안 오피, 장 미셸 오토니엘 등의 작품을 내놨다. 리안갤러리는 박종규(제이팍) 작가의 평면 작품을 비롯해, 거꾸로 서 있는 사람 이미지로 해외 페어에서 인기가 높은 독일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수채화 한 점을 선보였다. 펄램갤러리는 영국 작가 안토니 미켈레프, 중국 작가 가오 웨이강의 평면 작품을 부스 외벽에 걸었다.

펄램갤러리 부스 외관 전경.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리안갤러리가 출품한 독일 작가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2016년작 '무제'.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학고재갤러리는 트렁크와 고서를 이용한 작업으로 유명한 중견 작가 이진용의 대형 부조 신작을 부스 벽면에 전시했다. 특히 이 작품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회가 아닌 아트페어에서 먼저 선보인 신작이라 눈길을 끌었다.

아트부산 학고재갤러리 부스 전경. 이진용 작가의 대형 부조 설치 신작이 공개됐다.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은 사이즈 작품들이 여러 화랑에서 출품된 건 이번 페어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었다. 최근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백남준의 1996년작 '스태그'(Stag)가 59만 달러(약 6억6000만원)에 낙찰되며 10년만에 작가 최고가 기록이 깨진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학고재갤러리, 더페이지갤러리, 조현화랑, 베이징 아트이슈프로젝트 갤러리 등 '발 빠른' 갤러리들은 개인이 소장하기에 좋은 크기의 백남준 작품들을 다수 출품했다.

조현화랑이 출품한 백남준 작품.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아트부산에 출품된 백남준의 작품들.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볼거리는 많았지만, 신선함은 다소 부족했다.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전시회나 국내·외 아트페어에 자주 등장했던 형태의 작품들이 많았다. 게다가 갤러리 부스에 따라 작품의 수준도 편차가 컸다. "팔릴 것만 내놓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참여 갤러리에서도 나왔다.

전시장 가운데 메인 부스들을 뺀 주변 부스들은 유난히 '꽃그림'들이 많이 보였다. 5호 크기 미만의 100만원대 작품들로 전시 벽면을 빽빽하게 채우는가 하면, 천경자·박서보 등 국내 유명 화가들의 판화 소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고가 작품에서 저가까지 컬렉터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킨다 하겠으나, '아트바젤' 등 국제적인 명성의 해외 페어들과 비교하면 페어의 '타깃'과 정체성이 모호해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밖에 '특별전' 부스들을 통해 다양성을 꾀하려는 노력은 돋보였다. 아트페어가 단순히 작품을 매매하는 시장으로 역할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담론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려는 해외 유수 페어들의 기획을 벤치마킹한 흔적이다. 변홍철 감독이 기획한 '한국의 리얼리즘: 그리고 오늘'전과, 프랑스 출신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 부부인 도미니크 레비·실반 레비의 'DSL 컬렉션'전이 그것이다.

변홍철 씨가 기획한 아트부산 특별전 '한국의 리얼리즘'전 전경. 2017.6.3/ 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강요배, 김정헌, 손장섭, 안창홍, 이종구, 임옥상, 주재환, 황재형 등 민중미술 계열 작가들과 함께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의 '위로공단'을 보여준 '한국의 리얼리즘'전은 팔리는 작품만 내놓을 수밖에 없는 페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다.

'DSL 컬렉션'전에서는 중국 현대미술 애호가로도 알려진 레비 부부의 중국 작가 컬렉션을 선보였다. 쉔샤오밍, 쉬전, 순위엔&펑위, 장딩, 청란 등의 대표작들을 보여주는 한편, DSL 컬렉션을 '가상현실'(VR) 체험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아트부산 참여부스 모습. 2017.6.3/ 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미성숙한 시장에 담론 부재…"한국 미술교육 근본적인 개선부터"

"디자인 기획전이 열린 전시장에 1시간 반동안 관람객이 20명도 채 안 왔어요. 전시 수준은 너무 좋은데…. 바로 옆 카페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데 말이죠." 국내 한 화랑 관계자의 말이다.

아트부산은 올해 벡스코 메인 전시 외에도 '디자인 아트부산'전을 선보였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옛 고려제강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전시공간 'F1963'에 마련한 전시로, 이곳은 지난해 부산비엔날레에서 전시 공간으로 호평받은 이후 부산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디자인 아트부산'전. 2017.6.3/ 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디자인 아트부산'전.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아트부산을 주최·주관하는 사단법인 아트쇼부산(대표 손영희)은 올해 '아트버스'를 도입해 벡스코 전시장부터 소울아트스페이스, 가나아트, 조현화랑, 프로젝트B6, F1963, 부산시립미술관을 연계한 도심 전시공간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작 관람객이 몰린 건 전시장이 아닌 '카페'였다. 가구·인테리어 소품 등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명품급 디자인 작품들을 선보이는 수준급 전시임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뜸했다. 바로 옆 '테라로사' 카페에 주문을 기다리는 대기 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국제적 명성의 갤러리들이 참여하고 아트페어와 연계한 위성 전시까지 '구색'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아트부산의 '흥행' 성적은 대체로 저조하다는 평가다.

정희철 한국화랑협회 팀장은 3일 "전날의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가 반전되는 등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며 "서울 컬렉터들이 아트부산을 찾았고, 부산의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오랜 컬렉터들이 작품 구매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 작품 판매의 뚜렷한 결과들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아트페어는 오는 5일 월요일까지 이어지니 최종 판매 여부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내세울 만한 성적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정 팀장은 "국제 아트페어를 열기에 부산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고, 아트부산이 국제적 수준의 아트페어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해 온 지난 시간이 있었던 만큼 아직 많은 갤러리들이 기대감을 갖고 있다"며 "마지막까지 갤러리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뮤지컬 '마타하리'의 대형 포스터 제작 협업을 했던 작가 데이비드 야민의 그림들.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전시 관계자들은 아트페어의 흥행 저조에 대해 대체로 '홍보 미흡'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페어를 알리기 위한 전략적 홍보와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난립'하는 가운데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만한 아트페어로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는 점, 아트페어를 특정 이익집단이 운영하는 탓에 참여 갤러리들의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기 힘들다는 점 등이 꼽힌다.

결국 '딜레마'가 반복된다. 좋은 작품을 살 큰손 컬렉터들은 정작 살 작품이 없고, 작품 살 사람이 없는 페어에 수준 높은 국제적 화랑들이 들어오질 않는다는 거다.

협소한 지역 컬렉터 층도 문제로 지적됐다. 변홍철 감독은 "보다 적극적인 지역 컬렉터 개발과 교육이 필요하다"며 "그로 인한 시장 확장을 통해 더 수준높은 화랑들이 페어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트부산 전시장 전경. 2017.6.3/뉴스1 © News1 김아미 기자

한국 미술계의 토양이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 위주의 성장만 주목받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아트페어에 '대안공간'이 참여한 건 그 단적인 예다. 대안공간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지나친 상업화에서 탈피하고자 만들어진 예술 공간으로, 주로 기부금이나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작품 매매를 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 대안공간에서 작품 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건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된 데다, 아트부산을 기점으로 키아프 등 국내 주요 아트페어에 대안공간들이 참가하게 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대안공간마저 시장 논리에 함몰되는 현실이다.

국내 한 화랑 관계자는 "우리나라 미술 교육에서부터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편일률적인 실기 위주의 미술교육에서 '감상' 위주의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그림을 사고 파는 재화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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