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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main'행위미술' 대가 김구림 vs 이건용 "예술도 짧다"

2016.08.30

[뉴시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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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구림,Yin and Yang 15-S. 45, 2016, Mixed media, Size variable 16-08-29

'무엇으로부터 그런 상황을 벗어날수 있을까' 당시 청년 예술가들은 '그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과제였다.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체제와 권력이 모든 담론을 장악하고 있던 때였다.

억압은 저항을 낳는다. 1960년대 후반부터 미술그룹 AG(아방가르드협회)와 ST(space &time)가 탄생되며 한국의 실험 미술붐이 일었다. 당시 모노크롬 회화 대세속에 작가들의 퍼포먼스가 유행처럼 번졌다. 젊은 작가들이 온 몸으로 발언하는 '행위 미술'을 군사 정권은 '불온 미술'로 낙인찍었다.

당시 행위 미술 중심에 김구림(81), 이건용(75)가 있었다. 김구림은 실험 미술그룹 AG을 주도한 인물로 '한국실험미술의 선구자'다. 60년대 중반부터 플라스틱, 기계부속품, 비닐 등을 사용한 매체 실험과 오브제 작업을 통해 전통적인 회화의 방법론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실험을 통한 조형적 해체를 추구해왔다. 1969년 실험그룹인 '제4그룹'을 결성하고, 한국현대사회의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콘돔과 카바마인',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과 같은 일련의 퍼포먼스들을 보여주었다.

이건용은 '한국 행위 미술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가다. 1975년 발표한 '동일면적'과 '실내측정'을 시작으로, 197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약 5년여에 걸쳐 40개가 넘는 행위미술 작품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의 그 어떤 작가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행위미술 작품을 발표한 것이었고, 동시에 한국 행위미술의 지지부진한 전개를 일순간에 전환∙정착∙확장시킨 것이었다. 1970년대 AG와 ST 활동을 통해 이건용의 행위예술은 '논리적 이벤트'라고 명명되며 한국 행위예술 발전의 모태가 됐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퇴비더미에 탯줄이 달린 아이와 팔다리가 버려져 있다. 김구림, Yin and Yang 16-S. 55, 2016, Mixed media, Size variable 16-08-29

국내 행위미술 대가 두명이 30일 동시에 개인전을 연다. 40여년만에 서울 사간동 이웃 화랑에서 전시하는 둘의 작품은 다른 듯 닮았다.

팔순의 김구림은 '삶과 죽음의 흔적'을 타이틀로, 이건용은 '이벤트-로지컬'로 전혀 다른 제목이지만, '시대의 아픔'을 직시하고 있다. 김구림은 사물로 '현재'를, 이건용은 신체가 움직인 '과거'를 꺼내놓았지만 '예술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새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김구림은 노골적이고, 이건용은 개념적이다. 쉬운듯 어려운 듯한 두 전시는 결국 '인생은 짧고 예술도 짧다'는 것을 보여준다.

◇ 아라리오갤러리, 김구림 '삶과 죽음의 흔적'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김구림 작가. 16-08-29

김구림은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인간의 사고도 변한다"는 철학이 굳건하다. 그래서 "왜 작품이 변하기만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케케묵은 옛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며 “시대가 변하면 사고가 변하고, 사고가 변하면 당연히 작품도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하루에 신문 8개를 봅니다. 또 드라마 보다 뉴스를 보지요."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현실 세계의 현행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펼쳐온 '오늘'의 비극과 악마적 재앙으로부터 찾아냈다. '삶과 죽음의 흔적'을 타이틀로 '인간경시' 풍조를 지적한다.

전시장 지하 1층에는 2015년 남산골한옥마을의 '동거동락'에서 장소 여건상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였던 '음양-배' 작품을 다시 구현했다. 구름이 반사된 바닥에 떠있는 배 안에는 해골이 누워있다. 시리아 난민들의 뉴스를 본후 제작했다는 작품은 '하늘우물'이라는 고대의 모티브가 됐다. 고구려 벽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늘우물'은 하늘 자체가 우물이며,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29일 이건용 작가가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1976년작 '신체드로잉' 퍼포먼스를 재연하고 있다. 16-08-29

무덤처럼 보이는 퇴비더미에는 탯줄이 달린 아이가 버려져있기도 하고, 침대위에 성관계하는 장면을 흐릿한 영상으로 비춰 동물같은 소리로 자극한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르게 변한 '섹스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지난 2013년부터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구림은 쉽게 와 닿는 이번 전시에 대해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현대미술을 어렵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동시대 인간이 지닌 삶과 죽음의 보편적 진실을 지배적으로 드러낸 대형 설치, 영상 및 조각 신작 7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10월 16일까지.


◇갤러리현대, 이건용 '이벤트-로지컬'

【서울=뉴시스】이건용, '장소의 논리', 촬영: 1975; 인화: 1970s 젤라틴 실버 프린트 16-08-29

1970년대 미술계는 이건용 시대다. 그가 가장 정력적이고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시기다. 특히 이론가 김복영과 함께한 ‘ST’ 그룹 활동은 이건용의 미술세계에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토양과 함께예술적 실천의 배경을 제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발표된 1970년대 그의 행위미술은 한국 행위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 기반이 되었다. 1973년 파리비엔날레, 1979년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참가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 전시는 이건용이 주창한 ‘이벤트-로지컬’의 의의를 현재의 관점에서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다.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이건용의 주요 퍼포먼스 재연과 더불어 그와 관련된 드로잉, 기록 사진 자료와 작품을 공개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건용은 1970년대 당시의 자신을 '리키'라 불렀다. '리키'는 그가 화판에 한 사인의 약칭이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이건용씨가 1971년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16-08-29

이건용은 "'리키'는 그때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의 '신체 드로잉'은 최대의 저항이자, 스스로 생각하고 자문하게 하는 행위다. 그는 "그때의 신체드로잉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체제 억압적인 시대에서 ‘그리다’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21세기에도 물음을 던진다.

그는 “1970년대 사회 체제와 당대 권력이 모든 담론을 장악하던 시대에, 신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그리겠다는 것은 보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했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그 시대는 더군다는 통제시스템에 의해서 압축 성장하는 시기였다. 권력이 끌고 가는 시대에 전복하고 거부하는 예술의 수단으로 신체드로잉을 선택했던거지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과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언어학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연구적이고 분석적이다.

전시제목을 '이벤트와 로지컬'을 명명한 것에 대해 “합성이 불가한 이벤트와 로지컬을 함께 사용한 것은 혼란과 전근대성이 팽배한 사회에 자신의 논리적인 작품이 일종의 해답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가 행한 '신체 드로잉'은 세계 어느 작가도 구현해낸 적 없는 기법이다. 뿌리고 던지고 찢고 붙이기는 했지만, 캔버스 뒤에서 손을 앞으로 넘겨 펜이 닿는 만큼만 그리는 기법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함이다.

이건용은 여전히 "예술의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체"라고 강조했다. 아침마다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 모아 전시도 열었고, 6년째 씹던 껌을 모으고 있다. 30일 개막식에는 이건용이 1970년대 벌였던 퍼포먼스를 재연한다. 억압과 통제의 시대, '청개구리' 같은 작가의 기발함과 저항정신을 볼 수 있는 전시는 자본주의에 빠져있는 현대미술을 뒤돌아보게 한다. 10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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