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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무한한 대화 - 고승욱_박정근 2인展

2018.08.23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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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대화

고승욱_박정근 2인展

2018_0817 ▶︎ 2018_0905 / 공휴일 휴관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SPACE22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390 미진프라자 22층

Tel. +82.2.3469.0822

www.space22.co.kr

 

 

 

모뉴먼트(Monument) & 도큐먼트(Document) 

 

『△, □,○... 무한한 대화』 전시는 그동안 말 할 수 없었고, 언어가 되지 못한 것, 그래서 이해의 바깥에, 텅 빈 중심에, 공백으로 남아있는 것에 말 걸기를 시도한다.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의 책, 『무한한 대화』에서 전시의 타이틀을 가져왔다. 침묵에 천착한 블랑쇼의 저서들은 대개 '말할 수 없음'에서 시작한다. 그는 "말은 재현만이 아니라 파괴하는 역할도 한다. 말은 사라지게 만들고, 대상을 부재하게 하며 소멸시킨다."(Blanchot, Maurice, trans, Mandell, Charlotte, 『The Work of Fir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5, p.30.) 라고 언급하며 언어의 불가능성과 언어의 의미 작용을 벗어난 곳, 침묵의 장소를 찾았다. 말 할 수 없음을 통해 타자와 (불)가능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블랑쇼의 대화방식이었고, 이를 통해 바깥의 목소리, 들리지 않았던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결코 끝낼 수 없는 대화인지도 모른다. 블랑쇼를 경유하며 이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말할 수 없었던, 오직 침묵의 '공백'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형태를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진의 존재론에 대한 궁극의 모색이다. 사진은 말이 없는 이미지(image, 이-미지(未知))이고, 사진이 발화한다면 그것은 관객의 말 걸기에 대한 응답으로서 가능할 것이다. 말이 숨기 쉬운 장소, 사진은 애초부터 침묵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사진의 환원될 수 없는 무성한 가치들을 실현시키려면 사진이 응답할 때까지 사진 안에서 발생하는 근원적인 힘을 성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진의 의미론적 프레임을 벗어나 사진의 고유한 힘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런 말이 없는 사진과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전시에 참여한 두 작가, 고승욱, 박정근의 작업의 터는 제주도이다. 나고 자란 곳이 제주인 고승욱과 어쩌다 제주에 발을 디딘 후 10년 째 머물고 있는 박정근은 작업의 동지이자 선후배다. 제주의 선주민인 고승욱과 이주민인 박정근, 그리고 제주에 단 4박 5일을 머문 적 있는 기획자인 나. 제주의 선주민과 이주민, 구경꾼인 나는 꼭 일 년 전에 이 전시를 도모하며 제주의 텍스춰(Text-ure)를 떠올렸다. 제주의 결코 읽을 수 없는 질감들, 숨결들, 들릴락 말락 하는 음성들에 대해 생각했다. 구경꾼인 내게 제주는 다만 웅성거리는 이미지로 가득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 초에 제주 4.3을 기념하는 수많은 행사들이 있었고 기억투쟁이 벌어졌고 여기저기 동백꽃잎이 떨어지며 제주를 바라보는 여러 방식들이 제기되었는데도 내겐 아직도 잡히지 않는 이미지가 제주이다. 그래서 '무한한 대화'에의 예감이 들었다. 고승욱과 박정근, 두 작가의 대화, 고승욱과 제주, 박정근과 또 다른 제주의 대화들은 각각 결이 다르고 주고받는 시선도 다르다. 선주민 고승욱은 제주의 모뉴먼트(Monument)를 만들었고, 이주민 박정근은 제주의 도큐먼트(Document)를 수집했다. 고승욱은 제주의 원풍경에 촛불을 밝히고, 박정근은 4.3유가족들의 초상과 음성을 기록하고 수집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해녀의 초상을 찍었다. 그리고 구경꾼인 나는 이해 불가한 두 작가의 작업을 직조(texture)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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