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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갤러리문화 명지점] The Cells of Life 생명의 단위들 - 송운창展

2018.08.14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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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ells of Life 생명의 단위들

송운창展 / SONGWOONCHANG / 宋運昶 / sculpture

2018_0810 ▶︎ 2018_0909

 

 

갤러리문화 명지점

Gallery Munhwa Myeongji

부산시 강서구 명지국제6로232번길 14-8

(명지동 3455-6번지) 카페데이지 1층

Tel. +82.(0)51.291.3993

www.instagram.com/gallery_munhwa

 

 

 

지금까지 예술작품의 '몸'을 이루는 재료는 대개 무기질이나 무기질화된 것들이었다. 즉, 돌이나 흙, 금속이나 화학재료 등 그 분자간의 결합에서 생명의 끈을 갖추지 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예술은 이러한 생명이 없는 재료에 주술을 걸어 영과 혼을 불어넣었다. 예술에서의 양식과 방법은 주술의 다양성과 독창성과 다름없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가 주창하여, 헨리 무어 등의 현대조각을 이해하려던 개념이 '생명주의(Vitalism)'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현대조각은 조각의 물성 속에서 생명의 꿈틀거림을 극대화하려는 예술적 의지의 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런 노력 속에는 단순히 인간을 포함한 생명의 몸을 그대로 재현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유기체적, 더 나아가 영혼의 운동을 가시화하려는 의지가 동반되었다. 이후 마크 퀸(Marc Quinn)에 이르기까지 현대조각예술은 삶과 생명의 근원을 찾으려는 짧고 드라마틱한 모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예술은 과거 자연 대 예술이라는 대립적이며 이분법적인 구도를 해체하고, 결과가 아닌 원인으로서 그 존재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은 한 작가(혹은 예술가)의 경험의 소산을 보편적 이해 위에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보편적 진리 혹은 공리에 나름의 고유한 조형언어를 발설함으로서, 담론의 장을 여는 것이다. 송운창의 작품을 앞에 두고 필자는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지려한다. 첫째, '조형이 스스로 있는 존재(則者)로서 자연현상으로서의 생명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이다. 둘째, '미술에서 Ornament적 성질이 어떻게 자연과 관계를 공식화하는가'이다. 이 두 가지 질문을 중심적인 화두로 몇 개의 소주제로 논의를 전개해 보려고 한다.

 

송운창의 경우는 나무나 물 혹은 디자인된 인간의 몸이나 도구 등이 반영의 매개물로 사용된다. 설치 조형물이나 독립된 형태의 조각품을 모두 제작하지만, 특히 후자의 경우 그 반영의 방법은 이 글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세포(Cell)'적인 차원으로 수렴된다. 형상학(Morphology)의 일반적인 이론은 한 개체의 최소단위를 이루는 세포에는 그 전체 형상을 압축하여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송운창이 단위체로 제시한 이 형상적 모듈(Modul)은 자연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어 현실성을 보장하고, 나아가 이것을 조합함으로서 '세포복제'와 '증식'과 같은 생명의 기본원리까지 재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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