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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송은아트스페이스] 기민정 개인전: 돌아와 보니, 이상한 곳이었다

2018.06.21

Writer :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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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아트스페이스

참여작가 기민정

문의02-3448-0100

홈페이지www.songeunartspace.org/

전시명기민정 개인전: 돌아와 보니, 이상한 곳이었다전시기간2018.06.15(금) ~ 2018.07.15(일)전시시간(월~금) 오전 09시 ~ 오후 6시 30분 , (토) 오후 3시 ~ 오후 6시, (일) 오후 1시 ~ 오후 6시 / 공휴일 휴관장소송은아트스페이스 / (06011)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로75길 6주최/주관-후원-요금정보무료

기민정은 한 사람이지만 사실 협업을 하고 있다

 

0. 때로는 믿음이 필요하다.

‘여성은 없다’고들 하지만. 그리고 그 말이 곧 내가 서술할 바와 이율배반적이지도 않지만. 기민정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다고 생각해보는 편이 유용할 것 같아 우선은 그리 믿도록 한다. 유용하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그것이 얼마나 타당한가와는 별개로 두 가지의 축을 설정해두고 이 사이를 왕복하는 역동으로 기민정의 작업 방식에 접근하는 편이 잠정적으로 득이 될 수 있겠다는 이야기이다. 작업 과정 중의 크고 작은 동작, 망설임과 결단과 타협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설정하기보다 양 극단을 오가는 리듬을 상상할 때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마찬가지 이유로 기민정의 작업에서 색과 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연약한듯 하지만 막상 질긴 화선지 위 그림을 다채로운 색의 안료가 번지고 펼쳐져 있는 층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먹선이 잡은 형태로 구분해볼 수 있다고 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토대로 앞으로 얇고 짧은 서술이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동일한 인물일지도 모르는 텍스타일 디자이너와 재단사의 이야기이고,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기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1. 텍스타일 디자이너는 색의 배치에 관여한다.

얇은 종이를 받아든 그는 마치 자신이 유일한 창작자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가 그린 패턴이 이후에 재단사를 만나지 않을 것처럼, 형체가 불분명한 색면의 상태 그대로가 마치 최종 결과물인 것처럼 말이다. 재단사가 다소 까탈스럽고 걱정이 많다는 것은 충분히 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말이 텍스타일 디자이너이지 스스로의 역할을 단지 별개의 결과물을 위한 바탕칠 정도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색을 쓰는 사람이다. 색을 쓰는 사람답게 대인배 소질도 다분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몸을 사리지 않는 진정한 예술가, 갑자기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면 앞뒤 재지 않고 낯선 곳으로 자신을 던지고 마는 여행자, 그 누구에게도 스스로의 의도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무대뽀. 여러 색이 막무가내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도, 얇은 종이에 안료가 스며들어 벽에 자국을 남겨도, 창문 위로 종이를 붙여 놓았다가 바람이 불어 힘없이 찢어지고 떨어지고 말더라도, 그는 그러려니 했다. 그러니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최종 결과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라는 것을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가 붓을 놓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한, 완결된 색면이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감과 붓과 자국들로 지저분한 스튜디오. 그가 여성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과감하게 색을 쓰다니, 의외군, 작고 얌전하신 분이 이런 남성적인 스타일로 일을 하시는군요… 와 같은 이야기에 시달렸을 것이다. 물론 이런 건 그가 알 바 아니다.

 

2. 재단사는 색면을 잘라내어 실루엣을 잡는다.

물감이 어느 정도 말랐을 때 등장하는 이가 있다. 호방한 사람이 운이 좋으면 그의 몫까지 대신 마음 졸이는 사람이 곁에 있게 마련인데, 재단사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텍스타일 디자이너는 재단사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지만 그렇다고 재단사도 똑같이 무신경할 수는 없다. 그녀가 남달리 섬세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어쨌거나 그가 이미 ‘완성’한 무언가를 갖고 작업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물을 받아든 그녀는 대체로 만족스러워 하는 한편 망설인다. 이미 설정된 색의 조합과 균형에 어떤 방식으로든 손을 댄다면 모든 것이 어그러진다. 게다가 그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신의 에너지의 방향과 질감에 충실하게 반응할 뿐이고, 그 결과 그녀가 받아 들게 된 것은 필연성 없이 번져간 색면이었으니 어느 부분을 잘라내고 접고 깎을지를 계산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색면을 바닥에 놓고 차분히 내려다보거나 바람과 빛이 흘러 들어오는 창문 위로 걸어 놓고 그 주위를 서성인다. 어쩌면 그녀는 ‘그는 역시 이 면이 어떻게 읽힐지는 고려하지 않는군’ 하고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그녀의 역할은 주어진 색면을 잘라내고 가리고 깎아내어 실루엣을 만드는 것이다. 앞선 단계를 일임했던 자가 제아무리 온몸으로 원단에 안료를 먹여댄들 막상 결정권을 지닌 건 그녀였다. 그는 휘감아 오르다가 한 지점에 고이고 마는 보랏빛 기운이나 한순간에 솟구치는 푸른 물결이 자기 자신만의 작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에. 용솟음치는 움직임과 힘, 휘몰아치는 형태, 산란되는 빛은 사실 재단사가 색을 깎아 만들어낸 것이다.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더 구체적으로는 한 줄기의 색이 얼마나 날렵하게 경사를 내려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바닥에 미끄러질 것인지는 그녀가 무엇을 가리고 가리지 않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고민 끝에 한 부분을 지워내면 균형을 새로 잡기 위해 이곳저곳 계속해서 손을 대야 한다. 그렇게 차원을 더하거나 색의 대비를 이끌어내거나 색면의 투명도를 조정하던 그녀는 꽤 적절하다고 느낄 때 손을 땐다. 사방으로 달려가는 색을 적당히 가두었다고 생각될 때, 누워 있던 색들이 어느 정도껏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일은 끝이 난다.

 

3. 그와 그녀는 가끔 그런대로 괜찮은 균형을 이룬다.

마네킹에 씌우면 양복은 단단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양 극단에 있던 텍스타일 디자이너와 재단사는 굳이 결과물을 그렇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데에 동의했다. 구겨진 채로 바닥을 구르거나 햇살이 통과할 수 있는 상태를 선호한다며 이들은 입을 모았다. 끝단이 건조하게 말리거나 빛이 스치는 부분만 다른 채도를 얻는 정도의 여지가 오히려 그들이 함께 완성한 양복에 어울린다고 함께 생각한 것이다. 그와 그녀의 쇼룸 혹은 전시장에서 만난 여러 이미지들. 그중 어떤 것은 마치 그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색면의 역동이 두드러지고, 다른 것에서는 그녀에게 모든 통제권이 있다고 증언하듯 섬세한 먹이 빚어낸 실루엣이 전체 장면을 압도한다. 이들의 협업은 본질적으로 상호보완적이라기보다 반복된 상호작용과 타협을 통해 임의로 발생한 어떤 리듬에 가깝다. <돌아와 보니, 이상한 곳이었다>은 그러한 잠정적으로 도출된 균형 상태일 것이다. 

 

유지원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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