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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식[갤러리 담] 김동욱 사진展

2018.07.12

Writer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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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사진展

2018.07.21 ▶ 2018.07.30

 

 

탐독(耽讀): 김동욱 사진-서울, 심야산보(深夜散步)

장두식/작가, 번역가, 단국대 대학원 초빙교수 

 

 

01. 오래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는 김동욱 작가.

 

오래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는 김동욱 작가가 있다. 1995년. 정읍 농민들을 향해 진중하게 셔터를 눌렀던 무거운 작가다. 그는 사진에 현재를 담았지만, 그 현재를 통해서 과거를 탐색하려고 했다. 파노라마 카메라의 수평적 프레임 속에 담긴 평범한 농민들 속에는 한반도 최초로 ‘아니다’라고 외쳤던 100년 전 농학농민군들이 스며 있었다. 피사체와 이심전심으로 소통하면서 작업하는 ‘눈 맞춤의 사진(eye contact photo)’을 통해서 역사의 맥락을 이으려 했던 작업이었다(육명심 1995). 그는 이 작업에서 인물을 찍은 것이 아니라 토지라는 배경 속의 농민을 찍었다. 한국 산수화(山水畵) 기법의 활용이었다.

 

그의 카메라는 한국 부천, 중국 심천, 일본 시요와에 있는 미니어처 테마파크로 이동하였다.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세계 랜드마크 미니어처를 카메라로 담았다. 현실 공간을 모방한 거짓 공간을 프레임 속에 담는 작업은 시뮬라크르를 포착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플라톤적 의미의 이데아를 역추적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가상과 현실이 착종(錯綜)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해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는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와 상하이 필름 스튜디오로 카메라를 이동시켰다. 영화 세트 공간은 또 다른 시뮬라크르이며 역사적 네러티브를 극단화시킨 상징공간이다. 앞의 작업이 「그림엽서」라는 표제를 달았다면 뒤의 작업은 「오래된 사진첩」이란 제목을 달았다. 「그림엽서」가 표상을 모방한 가상 표상들을 통해 원본을 추적하는 작업이었다면, 「오래된 사진첩」은 영화라는 서사 장르와 관계 맺음으로써 역사적 내러티브를 복원하려 한 작업이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현실 재현능력과 암시만으로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는 이 난제를 카메라의 정체성을 살짝 비틀어서 극복하려 하였다. 전형적인 시점으로 피사체들을 촬영하면서 의도적으로 핀을 틀어 촬영한 것이다. 몽롱한 작품들은 사진의 재현성을 무너뜨렸지만 오히려 원본에 근접했고 많은 역사적 내러티브를 복원시켰다. 과거는 말을 할 때마다 바뀌지만 사진에 찍힌 과거는 언제나 자기 모습을 지키고 있다는 상식을 깨뜨리는 작업이었다(이경률 2006, 이관훈 2008).

 

그의 카메라가 이번에는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세계로 틈입(闖入)했다. 겸재가 그려 낸 한양 산수를 사진으로 방작(倣作)하는 엉뚱한 작업이었다. 표제가 「강산무진(江山無盡)」Ⅰ•Ⅱ였다.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속의 작품들이나 「인왕제색(仁王霽色)」은 눈에 보이는 풍경(風景)이 아니라 겸재 가슴 속에서 구성된 산수(山水)다. 진경(眞景)이란 현실이 아니라 현실 깊은 곳에 존재하는 참(초)현실인 것이다. 사진으로 겸재가 그려낸 한양을 방작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지필묵/문인화 대 카메라/사진, 오감(五感) 대 시각(視覺), 자연과 우주를 관조하는 문사적(文士的) 판타지 대 실재를 묘사하는 디테일의 차이는 서로간의 교섭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김학량 2009). 또한 한양과 서울의 시간적 거리감과 공간적 변모를 어떻게 연결하는가도 관건이었다. 따라서 그는 “선생이 발견한 ‘우리의 美’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또한 우리 국토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정확히 기록하려 했다.”라고 정직하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 노트>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보면 사진 미학의 임계점을 넘으려는 욕망이 드러난다. 겸재의 시선을 통해 발견한 서울 풍경(風景)은 그의 내면 풍경이 반영된 또 다른 산수(山水)였다. 공간의 무한과 인간 조망 속에서 현실의 단편이 어떻게 미적 현실로 구성할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다(류철하 2012-2013). 그의 작업은 불연속적이며 단편적인 실험이 아니라 연속적이며 발전적인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의 카메라는 겸재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늘의 서울로 향했다. 필연적인 이동이었다. 

 

02. 시민들이 사라진 서울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건물.

 

늦은 모임을 마친 후 시민들이 사라진 어두운 소공동 거리를 걷다가 그는 낯선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이 건물이 이 거리에 서 있었지 의아해하며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사진으로 호명(呼名)된 낡은 건물을 보는 순간 절실하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표정을 읽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놀랍게도 낯익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야기 속에는 젖살 통통했던 아이 하나가 삼일빌딩을 올려다보며 놀라기도 하고 눈망울 초롱초롱한 소년이 맞춤 양복점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가기도 했다. 정읍 농민들 속에 동학농민군들이 스며 있었듯이 우중충한 건물에는 지나간 서울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그는 기계적인 재현과 암시와 상징의 고안물(考案物)을 넘어서려는 사진의 또 다른 욕망을 감지(感知)했다. 

 

03. 건물 초상사진(肖像寫眞)의 탄생

 

그의 카메라가 서울 밤거리를 분주하게 배회(徘徊)하기 시작했다. 을지로-퇴계로-충무로-소공동. 대로를 벗어난 뒷골목에는 주눅이든 듯 고개 숙인 토박이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과거 서울을 소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우울했다.

세상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속에 소멸하는 것이니 건물 또한 사라질 수밖에 없지만, 파괴적 창조를 일삼는 서울에서 오래된 건물들은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마지막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흔적 하나 남지 않는다. 전통을 이야기할 수 없는 허망(虛妄)한 상황이다. 그는 동류의식(同類意識) 비슷한 걸 느꼈다. 

 

그는 예전처럼 ‘눈 맞춤의 사진’ 작업을 시도하였다. 사람도 아닌 건물과 소통을 하면서 셔터를 누르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작업이었다. 매혹적인 이성(異性)의 전화번호를 따내듯이 건물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고, 3.3 제곱미터 당 가격을 조사하고, 입주한 가게나 기업들을 탐색하다 보니 건물들이 자신의 속내를 조금씩 털어놓았다. 한양(漢陽)에서 한성(漢城)이 되었다가 다시 경성(京城)이 되고 지금은 서울이 된 도시에서 천천히 낡아가고 있지만 자신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황금시대도 있었다고. 마치 “조우는 푸른 등불아래/흘러간 그날 밤이 새롭다/조그만 찻집에서 만나던 그날 밤/목매어 부른다/그리운 그 밤을 부르누나 부르누나”라는 이난영의 애절한 노랫소리 같았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부드러워지자 사진 속에는 건물들의 기운생동(氣運生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산관(華山館) 이명기(李命基)가 강세황(姜世晃) 초상을 그릴 때처럼 이형사신(以形寫神)과 전신사조(傳神寫照)를 활용한 작업이었다. 건물의 외관만이 아니라 품성(品性)과 지나온 세월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건물 초상사진(肖像寫眞)의 탄생이었다. 그동안 축적하였던 실험의 결과였다. 그의 실험은 이제 임계점에 근접한 것 같다. 

그런데 초상사진 속 건물들은 도도하지도 않고 근엄하지도 고색창연하지도 않았다. 그냥 수수했다. 그런데 모두 푸르스름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이청준 소설에 등장하는 매잡이 같다. 

 

04.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야 할 김동욱 작가.

 

오래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있는 김동욱 작가에게 서울은 각별(各別)한 곳이다. 그 때문에 옛날 서울을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이 정다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작업에서 그의 카메라 앵글 대부분은 수평적이었다. 또한 한밤의 건물들인데도 어둡지가 않다. 불 켜진 창을 하나쯤 가지고 있거나 건물 옆의 가로등이 별처럼 반짝 빛나기도 한다. 사진의 기계적인 재현력은 무정(無情)하지 않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는 가치 있는 대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찍힌 대상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을 일관되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권위주의적인 착한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작업도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초상사진 모델로 건물들을 불러내자 그들은 비수(匕首) 같은 질문들을 마구 토해놓았다. 조만간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600년 고도(古都)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담론을 폐기하고 파괴적 창조로 달려온 서울은 과연 전통이 있냐고.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그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셔터만 눌렀다. 

건물 초상사진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질문이 정말 우문(愚問)이란 것을. 이제 자신들이 조만간 서울의 전통이 되리라는 것을. 사진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참고문헌>

김학량, 「전설 또는 길목-김동욱의 <방겸재> 작업에 대한 단상, 노암갤러리, 2009

류철하, 「강산무진(江山無盡)-공간의 무한과 현실의 점경」, 나무화랑, 2012-2013.

육명심. 「민중. 삶. 사진」,

 

 

 

 

전시제목   김동욱 사진展

전시기간   2018.07.21(토) - 2018.07.30(월)

참여작가   김동욱

관람시간   12:00pm - 06:00pm / 일요일_12:00pm - 05:00pm

휴관일   없음

장르   사진

관람료   무료

장소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 (안국동) )

연락처   02.738.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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